[한국영화의 여성혐오②] '프로불편러', 불편 감내하지 않는 관객들을 조롱 말라

[한국영화의 여성혐오②] '프로불편러', 불편 감내하지 않는 관객들을 조롱 말라

'프로불편러', 불편 감내하지 않는 관객들을 조롱 말라

기사승인 2017-10-07 00:00:00

최근 생긴 ‘프로불편러’라는 말이 있다. 대중 매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나 어떤 종류의 연출된 장면에 관해 느낀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표시하는 이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그들이 불편함을 표시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구시대의 악습을 그대로 담은 단어나, 혹은 인종 이나 여성, 일부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이 담겼으나 그를 의식하지 않은 채 일반에 노출되는 장면 등이다.

이들은 어떤 것에 관해 불편하다고 느끼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표출하며 수정을 요구한다. 최근 불거진 모바일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의 코피노 논란을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해당 게임은 유저를 대상으로 한 일러스트 공모전에서 코피노를 주제로 한 캐릭터 일러스트에 특별상을 시상했다. 그러나 많은 유저들이 해당 일러스트가 한국 사람의 성매매 피해 아동인 코피노들에 대한 존중은커녕 성적 대상화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에 주최사는 검토 후 즉각 수상을 취소했다.

해당 사건은 ‘프로불편러’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 정서’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방치하던 무례함들을 가시화하고 수정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프로불편러’라는 말은 대부분 프로불편러들, 나아가 여성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지난 7월 JTBC ‘아는형님’에 출연한 김희철은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언니 이거 나만 불편해?” 라고 말했다. 이는 ‘프로불편러’들의 성비와는 관계가 없다. ‘프로불편러’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어떤 통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프로불편러’들이 지적하는 불편함들 중 대다수가 여성차별이며, 그들을 적대시하는 이들은 여성차별 지적을 근거로 ‘프로불편러’들을 ‘언니’로 단정하곤 한다. 그리고 ‘아는 형님’에서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는 ‘언니’로 굳어지며 일종의 유희거리, 혹은 조롱거리가 됐다. 김희철의 발언과 프로그램이 이를 다루는 방식이 그를 방증한다.

앞서 기획 1([한국영화의 여성혐오①] '매드맥스 2'와 '브이아이피'가 피해자를 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나온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의 여성혐오 지적 또한 ‘프로불편러’들의 지적이 불씨가 됐다. 영화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은 지독히도 선정적이며 전시적이다. 오로지 악인의 악행을 장식하기 위해 상영되는 여성의 살해 장면에 관해 많은 여성 관객들이 여성혐오적이라고 전했으며, 이는 입소문으로 번져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다. 관련 인터뷰(경향신문)에서 최재원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대표는“우려스러운 것은 영화인들의 자기검열이다. 앞으로는 표현 수위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누군가 농담처럼 ‘이제 디즈니영화나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 당장 다음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라고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최 대표의 멘트가 국내 영화계의 제작윤리의식 부족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본이라는 데에 있다. 월트 디즈니 사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들은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자연스레 다양한 인종 의식이나 인권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공주와 왕자들이 나왔지만, 21세기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검은 피부와 검은 곱슬머리를 가진 모투누이 부족의 딸 모아나가 나와 “나는 공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는 관객의 다양한 계층과 성별 등을 제작자가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발전이다. 그것을 ‘디즈니 영화나’라고 낮게 싸잡아 일축하는 것은 제작자가 할 만한 발언이 아니다.

불편한 것을 지적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아이러니함이 지금 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작품이 감상자에게 줄 수 있는 불편함을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 또한 창작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범죄들이 여성이라는 현실의 통계에 근거한 창작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범죄를 참고로 재현했다는 작품들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보다는 범죄 그 자체를 관음하고 있는 것은 어찌 해석해야 할까.

‘예전에는 그냥 두고 봤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수많은 작품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러나 예전에도 그래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래야 할까? 그간 영화 제작자들이 작품을 생각 없이, 혹은 확고한 의식 없이 만들어왔다면 그것은 영화를 보는 누군가가 불편함을 표현하지 않고 감수하거나 묵과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프로불편러’는 제작자들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다. 관객이 느끼는 불편함을 인식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다 보면, 한국 영화계 전체의 질과 품위는 한 단계 또 상승해 있을 것이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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