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 한복판에 망해가는 DVD방이 있다. 이혼 후 신혼집의 전세금을 빼 차린 DVD방이지만 이제는 가게가 다시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사장 두식(신하균). 그리고 학자금대출을 갚기 위해 그 DVD방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직했지만 월급이 두 달째 밀려 그만둘 수도 없는 태정(도경수). 영화 ‘7호실’(감독 이용승)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권리금 1억을 내고 가게를 세냈지만 시장조사를 하지 않은 탓에 두식은 10개월째 월세도 내지 못하고 보증금을 까먹고 있다. 결국 권리금 8000만원에 계약하겠다는 후임 자영업자에게 가게를 넘기려는 때, 가게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계약까지 남은 날짜는 불과 이틀. 사고가 난 가게는 임차하지 않는 미신 때문에라도 두식은 사고를 은폐해야 한다.
태정은 아르바이트 월급 200여만원이 밀려 휴대전화 요금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음악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당장 돈이 급해 음악 작업을 하던 노트북을 전당포에 맡기고 나니 힘이 빠진다. 그 때, 평소 알고 지내던 형이 마약을 열흘만 맡아달라고 제의한다. 대출금 1800만원을 해결해준다는 말에 태정은 결국 약이 든 가방을 집어 챙긴다. 손님이 오지 않는 DVD방 7호실. 태정은 그곳에 마약을 숨긴다. 그러나 두식이 사고를 은폐하기로 택한 곳도 하필이면 7호실이다. 굳게 닫힌 7호실 문 앞에서 두 사람은 갈수록 꼬여가는 사건을 맞닥뜨린다.
‘7호실’은 블랙 코미디를 표방하는 만큼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꼬집는다. 가깝게는 청년층의 빈곤부터, 멀게는 무책임한 부동산 투자까지. 태정과 두식을 비롯해 작중 내의 많은 인물들은 나이부터 경제적 계층까지 각계각층을 대표하며 픽션보다 더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여준다. 권리금 1억을 두고 7000만원을 부르는 부동산 사장 앞에 8000만원으로 조금이라도 올려보려는 두식과, 노트북을 두고 20만원을 주겠다는 전당포 사장에게 30만원을 쳐 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는 태정은 나이와 금액만 다르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을 두고 끊임없이 이상적 윤리가 현실의 장벽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가늠한다. 당장의 생활 앞에서 도덕적 용기는 사라진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말하는 교감 선생님 앞에서 웃음 한 번 짓지 못하는 두식의 얼굴은 관객에게 쓴웃음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리듬감 넘치는 신하균과 도경수의 열연은 관객을 어느새 스크린 안에 녹아들게 한다. 신하균은 7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7호실’ 제작보고회에서 “내가 맡은 캐릭터들 중 가장 현실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연기 소감을 밝혔다.
자리에 함께한 이용승 감독은 ‘7호실’에 관해 “자구책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 사람들을 스크린에 담았다”고 밝혔다. 블랙 코미디이기 때문일까. 결국 영화 속의 몇몇 사건들의 윤리적 책임은 관객의 몫이 된다. 오는 15일 개봉. 15세가.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