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계 전체가 혼란스럽다. 안으로는 협회에 대한 회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고, 밖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른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 상황이다. 게다가 협회장들의 선거가 올해 몰려있어 선거 전후의 혼란과 그에 따른 여파가 상당할 전망이다.
당장 오는 10일, 대한의사협회는 임시대의원총회를 갑작스레 개최한다. 1일 추무진 의협회장의 불신임(탄핵) 안이 공식적으로 접수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탄핵안이 부결된지 5개월만이자 임기를 2달여 남겨둔 상황에서 벌어졌다.
차기 의협회장 후보출마를 선언한 최대집 전국의사총연합 대표는 탄핵사유로 문재인 케어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고, 의료전달체계 개선논의를 단독으로 추진하는 등 의료계 주요 사안 해결에 혼선을 줬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의협 내부에서는 차기 회장선거를 둘러싼 정치적 공세라는 비난부터 내분을 조장하는 비겁한 행위라는 비판, 결국 올게 왔다는 동조론까지 다양한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평소 집행부의 무능과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3월에 있을 선거분위기와 결합돼 더욱 거세지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회원들의 불만도 불만이지만 내부 직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최근에는 4급 기술서기관인 국립포항검역소장을 사무총장에 임명하며 분위기가 묘하다. 그간 회장 직권으로 외부인사들을 고위직에 앉혀 왔지만 지나치다는 말들이 많다.
더구나 내부직원들의 잦은 인사이동과 낮은 처우개선, 회장 등 집행부의 잦은 해외출장과 성과부족 등 이어지는 행태가 문제시되며 뒷말이 무성하다. 일부에서는 임기를 4개월여 남겨둔 지금까지도 사리사욕만 채웠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들린다.
문제는 이 둘만의 혼란이 아니라 점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와 대한간호사회는 선거제도가 논란이다. 김철수 치협회장 등 집행부는 일부 선거철차상 문제가 불거지며 직위를 잃게 됐다. 이에 현 집행부는 전 집행부와의 법적 대응을 시사하며 다툼을 벌여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한간호사회도 후보등록 및 선출과정의 불투명함이나 일선 간호사들과 집행부 간 불신이 쌓이며 직선제 요구가 이어지는 등 내홍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당연하지만 일선 간호사들의 요구가 집행부와 정부로 전달되지 못해 한파 속에 거리로 나오는 간호사들까지 등장했다.
대한약사회의 경우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난해 말 있었던 탄핵안 부결 이후에도 여전히 원인이 된 사안들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고 고소고발로 이어져 안전상비약 품목조정을 비롯해 약사직능과 업무영역을 위협하는 현안들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회원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 의약단체와 보건의료 그리고 국민건강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사회는 법으로 인정한 보건의료계 이익단체다. 이들은 국민건강증진과 수호, 삶의 가치와 질 향상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두고 정부와 협력해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집단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존재한다.
단적으로 이들 보건의약단체들은, 일부 논란은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발표된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논의를 진행하며 국민들의 건강한 삶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적정수가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이들 의약단체들이 위기에 처하며 정책 방향이나 논의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올바른 의료이용행태를 유도하고 의료기관들의 기능을 정립해 기관별 특성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개선 논의가 이뤄지던 의료전달체계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감기약, 파스 등 24시간 편의점 등에서 판매가 가능한 안전상비의약품의 품목조정 논의도 멈췄다. 이 외에도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핵심으로 하는 간호인력 개편 논의, 치과치료 보장성 강화정책 등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의료계 한 원로는 “국민건강과 보건의료단체, 정부정책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유기적으로 작용한다”며 “보건의료계 내부의 혼란은 결국 국민건강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구성원 개개인이 스스로를 다스리고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선거를 비롯해 협회 내부의 일일지라도 내부의 혼란이나 문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정책이나 제도의 운영 혹은 설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건강문제와 연관되는 만큼 신중해야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찬란했던 과거만을 생각하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질타이기도 하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전문가는 더 이상 정보와 지식을 독점한 군림하는 혹은 가르치는 이들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의사의 처방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근거를 바탕으로 질문을 하고 있다”면서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고 보건의료인들 개개인이 스스로를 돌아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들의 풍요로운 삶, 높은 곳에 머무르는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며 협회나 집행부, 사회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에 앞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대안은 없는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현실의 고단함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한다”고 첨언했다.
이들의 의견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환자를 두 손으로 치료하고 국민을 등에 업은 채 그 대가를 정부나 국민에게 받고 있는 만큼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보건의료는 삶의 기본이자 관계 속에서 도출된 서비스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