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김민재)은 아버지 귀보(유해진)의 꿈을 이어받아 국가대표 레슬러가 되기 위해 매일 구슬땀을 흘린다. 귀보는 성웅을 매일 뒷바라지하느라 이제는 프로 살림꾼이 다 됐다. 그런 아빠를 짠하게 생각하는 성웅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굳이 귀보와 같이 밥을 먹기 위해 상에 앉는 효자 중 효자다.
성웅에게도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있다. 한 지붕 아래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처럼 살아온 가영(이성경). 가영은 성웅의 경기마다 응원을 나오고, 아침마다 귀보와 성웅에게 우유 두 팩을 건내며 두 사람의 건강을 챙긴다. 그런 가영에게 벼르고 벼르던 고백을 쏟아내려고 날 잡고 놀이공원에 간 성웅은 반대로 가영에게서 충격적인 고백을 듣는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 귀보를, 갓 스무 살 된 가영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그 다음에는 충격적이다. 영화 ‘레슬러’(감독 김대웅)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자신의 아버지를 좋아한다는 상황에 놓인 성웅의 감정선을 통해 관객들이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파릇파릇한 스무 살 여자아이가 마흔 된 홀아비를 좋아한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가영은 어릴 적부터 귀보를 좋아했다고 밝히며 다양한 이유를 댄다. 그 이유를 통해 관객들이 귀보의 삶을 들여다보며 귀보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위해서다. 이야기는 점점 귀보와 성웅-부모자식간의 사랑으로 포커스가 옮겨지고, 결국 두 사람은 서로 안에 쌓인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놓게 된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장치가 너무나 황당해서 도리어 몰입이 어려워진다.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 중인 가영은 귀보를 쫓아다니느라 레슬링을 하겠다고 설쳐대고, 그런 가영을 보는 레슬링 체육관의 선수들의 시선은 노골적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귀보만이 평온하다. 귀보를 올바른 어른의 모범적인 예로 들어주기 위해서라면 괜찮다. 그러나 그 사례가 너무 비범하다 못해 당황스럽다. 예쁘고 어린 여자가 단지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는 이유로 아저씨를 유혹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는 모습은 귀엽다기보다는 몰입을 방해한다. 가영이 아저씨를 처음 좋아하게 된 건, 가영이 10세 때라는 설정에서 그 당혹감은 폭발한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관객의 진입문이자 성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계기의 만듦새가 그렇게 거칠기 짝이 없다 보니, 성웅이 폭발시키는 감정 또한 거칠다. 관객은 자연스레 스크린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관객은 앉아서 지켜보는 사람이지만, 스크린이 관객을 이렇듯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만들어 버리면 당혹스럽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성웅이 정상인의 범주에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성웅은 관객의 마지막 디딤돌이자 믿을 구석이다.
김대웅 감독은 “부모와 자식이 각자 자식의 인생을 찾아가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막장 설정이 난무하며 극의 후반부에서 부모와 자식의 인생은 어느새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가영의 인생은? 스크린에서 억지로 봉합되는 가족의 삶은 엔딩 즈음에서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귀보 또래의 아저씨들이 온갖 징그러운 짓을 저질러 '미투'운동에 불이 붙은 현실에서, 굳이 '무해한 아저씨'의 삶을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달 9일 개봉.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