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은 옛 것을 지키려는 자와 새 것을 취하려는 자 사이에 생긴 갈등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시장 현대화 사업을 반대하는 상인들과 이에 맞선 수협중앙회 간 얘기다.
‘칼부림 참극’ 이후 2년이 지났지만 노량진은 바뀌지 않았다. 아직도 구(舊)와 신(新)이 ‘공존’하고 있다. 철거 직전인 구 시장과 신축건물(신 시장)이 나란히 영업을 하고 있다.
구 시장은 오래전부터 ‘불법’ ‘위험건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구 시장은 안전등급에서 ‘C’등급을 받고 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신 시장 입주를 거부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유가 뭘까.
취재진이 노량진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햇볕이 뜨거운 금요일 이었다. 구 시장으로 가면서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취지의 현수막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수협을 비난하는 문구도 보였다.
허름한 입구로 들어갔다. 빈 가게가 꽤 많았다. 신축 건물로 이전하거나 문을 닫은 것. 벽에는 ‘폐쇄 철거 예정’이라는 붉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시장은 한적했다. 명절을 앞둔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결 투쟁, 구 시장 절대사수’가 적힌 팻말이 상황을 대신 설명해주고 있었다. 취재를 시도했지만 상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한 상인은 ‘신 시장 입주비용’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입에 손가락을 댔다.
‘시위는 계속 하지만 요즘은 좀 뜸하다’는 내용만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구 시장을 나와 신 시장으로 갔다. 신 시장은 지하 2층, 지상 6층짜리 시멘트 건물이다. 1층이 시장이고 2층은 식당가다. 시장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가게들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이다. 낮부터 횟감을 찾는 이들로 북적였다.
도매업을 하는 상인에게서 믹스커피를 한 잔 얻어먹고 사정을 들어봤다. A씨에 따르면 구 시장과 신 시장 입주비는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건물을 잘못 지었다는 것. A씨는 좁은 공간과 꽉 막힌 시야를 문제 삼았다.
A씨는 “공간이 좁다”며 “통로가 너무 좁아 얼음차가 지나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 기둥을 겸한 화장실이 8개가 있었다. 화장실 옆에는 매점이나 분식점이 딸려 있었다. 공간낭비가 커보였다.
A씨가 지적한 또 다른 문제점은 가게를 등진 벽이다. 구 시장과 달리 신 시장은 벽에 가로막혀 손님들이 가게를 찾아오기 힘들다는 것. A씨는 “한 번 가게에 왔었던 손님들도 반대편에서 전화를 걸어야 찾아올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A씨는 구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가 신 시장이 생기고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그는 구 시장에서 있을 때만해도 장사가 잘됐다고 했다. 그러다 신 시장으로 옮기면서 경기가 나빠졌다.
A씨는 “벽을 트기만 해도 구 시장 상인들이 입주할 것”이라며 “구 시장 상인들이 오히려 더 똑똑하다”고 말했다.
상인은 기자에게 건물 3~5층을 반드시 올라가보라고 신신당부했다. 5층은 하늘정원과 대형 회 식당이 두 곳 있었다. 식당 한 곳은 공사중이었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같은 층에 있던 대회의실도 사용이 뜸해 보였다. 공간이 남는 지 세무사 사무실이 들어와 있고 그 옆에는 체력단련실이 있었다.
A씨는 “수협이 상인들을 위해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자기들을 위해서 건물을 지었다”며 “건물을 좀 더 신경 쓰고 지었으면 좋았을 걸 수협에서 욕심을 부렸다”고 한탄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