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그냥 출근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난 12일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직장인 7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53.1%가 ‘명절 연휴 출근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명절이 아니라 ‘노동절’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닌 듯한데요.
누가 법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니건만 자연스럽게 벌초는 남자, 차례상 차리기는 여자 몫이 되었습니다. 순간 의문이 들었습니다. 역할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눈 걸까요. 그래서 바꿔봤습니다. 여성 기자 3명이 벌초를, 남성 기자 2명이 차례상 차리기에 나섰습니다.
女-벌초 준비를 위해 인근 농자재 가게를 찾았습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도구는 예초기인데요. 기자들은 예산과 사고 위험 등의 문제로 예초기 대신 낫을 택했습니다. 조경용 가위와 풀을 긁어모을 갈퀴도 구입했습니다. 안전장비도 필수입니다. 얼굴과 발을 각각 보호할 방충모와 두꺼운 장화를 샀습니다. 모기 기피제와 뱀 퇴치 효과가 있다는 나프탈렌도 준비했습니다.
男 -메뉴 선정이 먼저입니다. 토란국, 전(동그랑땡·동태전·꼬치전), 나물(시금치·고사리·도라지), 고기산적, 생선찜, 송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차례상 차리기 전날 미리 대형마트를 찾았습니다. 고기는 어떤 부위를 사야 하는지, 생선찜에는 어떤 생선을 사용해야 하는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옵니다.
-‘낫질은 어떻게 하는 거지’ 처음부터 난관이었습니다. 회사 옥상 화단에서 예행연습을 진행했습니다. 풀을 한 움큼 쥐었지만 생각처럼 쉽게 잘리지 않았습니다. ‘진짜 할 수 있을까’ 한숨이 나왔습니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지난달 30일 벌초대행업체 대표와 함께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한 야산을 찾았습니다.
-장을 봐 온 재료를 하나씩 꺼내는 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토란국에 넣을 토란 대신 토란대를 산 겁니다. 무려 미얀마에서 날아온 토란대입니다. 토란국은 뭇국으로 급히 변경됐습니다. 기자 2명은 각각 국과 전, 그리고 고기산적·나물·생선찜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송편은 함께 빚기로 했죠.
-산 중턱에 다다르니 이날 작업할 묘소가 보였습니다. 기자들이 낫과 조경용 가위를 꺼내자 대행업체 대표는 “20년 전에도 낫으로는 벌초를 하지 않았다”며 못 미더운 시선을 보냈습니다. 기자들 또한 걱정됐지만 이미 던져진 주사위였습니다. 허리를 굽혀 실전에 돌입했습니다.
-요리 시작 5분 뒤, 쪽파를 썰던 기자의 손이 칼에 베였습니다. 다른 기자는 간 맞추기에 실패했습니다. 간장을 주체하지 못해 시커먼 뭇국이 탄생했습니다. 고기산적 역시 짭니다. ‘밥과 같이 먹으면 돼’ 위안 삼아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벌초를 준비하며 가장 우려했던 것은 벌과 뱀이었습니다.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벌에 쏘이거나 뱀에 물린 국민은 7만7063명에 달합니다. 다행히 이날 벌과 뱀으로 인한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낫질이 서툴러 잡초 대신 발등을 찍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시금(金)치’라고 하죠.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시금치로 나물을 무쳤습니다. 기세를 이어 도라지무침에 나섰습니다. 또 실패작이 탄생했습니다. 이번에도 간장이 문제였을까요. 도라지무침은 장조림을 방불케 했습니다. 동태전과 꼬치전 만들기도 험난했습니다. 불판 앞에 서기도 전에 재료 손질로 진땀을 뺐습니다.
-복병은 따로 있었습니다. 기자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더위였습니다. 작업 시작 30분이 지나자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윙윙’ 날아다니는 벌·모기 때문에 방충모와 겉옷을 벗을 수 없었습니다. 1시간이 흐르자 “제발 쉬다 하죠”라는 애원이 절로 나왔습니다.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익었습니다. 돗자리에 쓰러져 10분간 휴식을 취했습니다.
-차례상 차리기의 ‘꽃’. 대망의 전 부치기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양 조절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부침가루와 달걀을 묻힌 동그랑땡을 불판 위에 올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동그랑땡의 속은 끝내 익지 않았습니다. 햄버거 패티만큼 두꺼웠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누운 풀을 반대로 세워 다시 베는 ‘스킬’을 구사하며 봉분을 정돈했습니다. 꼬박 1시간30분에 걸쳐 벌초를 마쳤습니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두려웠지만 ‘할 만하다’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어깨와 팔이 뻐근해졌습니다. 당장 내일 출근이 우려됐죠. 대행업체 대표는 “100점 만점에 85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기자들이 미처 끝내지 못한 작업은 대행업체에서 예초기를 돌려 마무리했습니다.
-생선찜은 가장 고난도였습니다. 취재 현장을 다니며 겪은 산전수전보다 날생선 만지기가 더 무서웠던 기자. 기자를 노려보는 생선의 눈빛을 이기지 못해 결국 키친타월로 생선 눈을 살포시 가려야 했습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차례상 준비는 5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설거지 더미가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시간여의 뒷정리를 끝내자 기자들은 허리·종아리 등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각자 체험을 마친 기자들. 굳이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나눠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에도 지레 “나는 서툴러” “나는 못 해”라는 이유로 피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일단 한 번 해보세요. 생각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기획취재팀 spotligh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