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 지사 몸에는 점이 없다.’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의료진이 지난 16일 신체검사 후 발표한 내용이다. 배우 김부선씨와 소설가 공지영씨의 녹취파일로 불거진 ‘큰 점 논란’은 이 지사 판정승으로 기우는 듯하다. 이른바 ‘여배우 스캔들’을 입증할 자료는 사진 한 장뿐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
해당 사진은 지난 2009년 김씨 팬카페에 처음 올라왔다. 김씨 본인이 올렸다. 누구도 사진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건 지난 6월 지방선거 경선 과정. 김영환 당시 바른미래당 경기지사 후보는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배우 스캔들 증거로 해당 사진을 제시했다.
날짜는 2007년 12월12일. 김씨 주장에 따르면 사진은 이 지사가 찍었다.
김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지사가) 저희 집에 태우러 와서 이동하면서 바닷가 가서 사진 찍고 거기서 또 낙지를 먹고. 그때 이분 카드로 밥값을 냈다.”
그의 주장은 사실일까.
▲의문1. 사진 속 장소는 어디인가
사진 속 장소는 인천 중구 운북동 예단포가 유력하다.
김씨가 서 있는 곳은 ‘예단포 선착장’. 선착장은 11년 전인 2007년에도 물론 존재했다.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형체는 ‘장고도’ 끄트머리로 보인다. 왼편 ‘신도’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안개 때문으로 추정된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07년 12월12일 인천에는 박무(엷은 안개)와 연무(티끌과 그을음 따위가 공중에 떠 있어 안개처럼 보이는 대기 혼탁 현상)가 꼈다. 지역 주민들은 “안개가 자주 끼고, 또 그런 날에는 바다 건너편 섬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 8월 이 지사와의 식사 장소로 추정되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인천에는 같은 상호를 가진 횟집이 두 곳 있다. 이 중 ‘바닷가에 가서 사진 찍고 낙지를 먹었다’는 김씨 주장과 부합하는 장소는 예단포다.
여배우 스캔들 사건을 맡은 경기 분당경찰서도 예단포를 찾았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경찰은 두세 달 전 이곳에서 탐문 조사를 벌였다.
▲의문2. 사진은 누가 찍었나
앞서 언급했듯이 김씨는 이 지사가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한다. “이 지사가 사진을 찍어주면서 내 가방을 들어줬다”는 부연도 있었다.
그러나 2008년 한 온라인 매체가 해당 사진 저작권자를 김씨 사촌 A씨로 게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논란은 다시 시작됐다. 저작권자 표기를 근거로 김씨와 예단포에 동행, 사진을 찍어준 이는 A씨일 것 이라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사진은 정말 A씨가 찍은 것일까. A씨는 쿠키뉴스에 최초로 관련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다.”
A씨는 “당시 김씨 매니저 일을 돕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해당 사진은 찍지 않았다.”며 “왜 내 이름이 저작권자로 올라갔는지 나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주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그때는 저작권 개념이 거의 없었을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A씨는 또 “자신은 정치인도 연예인도 아니”라며 “계속 사람들 입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이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의문3. 낙지는 어디서 먹었나
현재 예단포 선착장 인근에는 20여개의 식당이 있다. 주로 수산물을 조리해 판매한다. 그러나 2007년에는 사정이 달랐다. 당시 예단포 선착장 인근 가게는 두 곳 정도였다. 이 중 낙지를 먹을 수 있는 곳은 ‘해변상회’ 한 곳뿐이다.
해변상회와 함께 장사 했던 ‘충남상회’는 잡화를 판매했다. 해변상회 주인은 “당시 음식을 파는 곳은 우리집 하나였다. 그래서 지금보다 매출이 훨씬 높았다.”라고 말해 신빙성을 더했다.
해변상회는 두 차례 점포를 옮겼다. 최초의 장소는 선착장 기준 왼쪽 해변가다. 가건물로 시작한 해변상회는 2008년 인천도시개발공사가 영종 공항도시 내 ‘운북복합레저단지 개발사업’을 추진하며 인천중구청에 의해 철거됐다. 마을 안쪽으로 이사했던 해변상회는 4~5년 전 ‘예단포항 회센터’가 들어서면서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 김씨가 정말 해변상회를 찾았다면, 해변가에 있던 해변상회를 방문한 셈이다.
김씨 주장 이후 ‘네티즌 수사대’는 주장의 근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한 페북 이용자는 장문의 글을 작성, 김씨를 반박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당시 마을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해산물 직판장이 두 곳 있었고, 간이 테이블에서 간단히 회를 먹을 수 있었다.’ ‘어촌계에서 운영 하는지라 카드 거래는 하지 않고 현금만 받았으며, 봄부터 늦가을까지만 가게 운영을 했다.’
취재결과 직판장이라 할 수 있는 곳은 해변상회와 충남상회다. 선착장 주변에서 주민 몇 명이 갯지렁이와 바지락을 대야에 담아 판매할 수 있었지만, 소일거리의 개념이었다. 당시 해변상회는 겨울(11월 이후)이 되면 간헐적으로 식당을 열고 닫았다.
▲의문4. 낙지는 겨울에 먹을 수 없나
일각에서는 ‘낙지를 먹었다’는 김씨 발언도 거짓말이라고 본다. 낙지가 동면을 하기 때문에 겨울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예단포항 회센터에서 만난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예단포에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낙지를 먹을 수 있다.” “겨울에도 배에 설치한 통발 그물에 낙지가 걸린다.”는 의견과 “12월에는 너무 추워서 낙지를 잡을 수 없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해변상회는 낙지 전문점이다. 이곳은 현재도 산낙지, 낙지볶음, 연포탕, 낙지칼국수 등 낙지를 이용한 메뉴를 주로 판다.
해변상회 주인은 “다른 곳은 어떨지 몰라도 우리 가게에서만큼은 사계절 내내 낙지를 먹을 수 있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단언했다. 또 “낙지가 잡히지 않는 계절에는 수입산이라도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의문 5. 카드 결제가 가능했나
카드 결제 시스템이 없었다는 의혹은 사실일까. 결론은 아니다.
해변상회는 10여 년 전부터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었다. 카드 단말기도 있었다. 당연히 카드 결제도 됐다.
그렇다면 김씨의 주장은 카드 결제 내역을 살피면 증명되는 것 아닐까. 그러나 해변상회 주인은 “당시 사업자 등록은 말소되었다.”면서 “이를 비롯해 여러 이유로 카드 내역 확인이 어려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카드 영수증에는 현상금이 걸렸다. 500만원을 내 건 사람은 공씨 지인으로 알려진 이창윤 시인이다. 그는 “2007년 12월12일 해당 장소에서 낙지를 먹고 이 지사가 계산한 카드내역의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를 찾아 제공하는 분께 현상금 500만원을 드린다.”며 “이 증거는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 지사는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시 우리은행 BC카드를 주로 썼다. 지난 2007년 12월12일 거래내역을 조회해봤지만 800원 주고 등기부등본 뗀 거 하나 외에는 기록이 없다.”고 일축했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이와 관련해 당사자인 김씨와 그의 변호인 강용석 법무법인 넥스트로 대표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하지 않았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 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신민경 기자 spotligh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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