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별세했다. 향년 94세.
1일 외신 등에 따르면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부인 바버라 여사가 92세를 일기로 별세한 뒤 입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별세했다.
고인은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구분하기 위해 ‘아버지 부시’로 불렸다. 그는 1966년 텍사스 주에서 하원의원에 당선, 정계에 입문했다.
생전에 유엔 주재 미국대사, 미 중앙정보국 국장, 부통령 등을 지냈다. 이후 1988년 대선에서 승리,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첫 해 12월 지중해 몰타에서 미·소 정상회담을 주재했다. 그는 당시 옛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동서 협력시대를 언급하며 탈 냉전을 선언했다.
이듬해 10월 동서독이 통일됐고, 부시 전 대통령은 “냉전 종식은 모든 인류의 승리”라며 “유럽은 완전히 자유로워졌고 미국 리더십은 이를 가능케 하는 데 중요한 노릇을 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화해 무드는 ‘북방외교’ 기폭제가 됐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옛 소련(러시아), 1992년 중국과 잇따라 수교했다. 1991년 9월에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뤄졌다.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도 이 때 이뤄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1991년 소련과 ‘전략무기 감축 협정’을 타결했다. 그 연장선으로 주한미군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철수시켰다.
당시 북한에 핵무기가 없던 상황에서 주한미군 전술핵이 철수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진다는 논리가 나왔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1년 11월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두 차례 국회 연설을 한 유일한 인물이다. 첫 방한은 노태우 대통령 7·7 선언 이후 이뤄졌다.
그는 1989년 2월 여의도 국회에서 “우리는 북한 쪽으로 다리를 놓으려는 노태우 대통령 평화적인 제안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며 “노 대통령과 긴밀히 협조해 북한을 실질적·평화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로 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2년 1월 국빈 방한 기간에는 북한이 핵시설 사찰을 수용하고 의무를 이행하면 한미 양국 팀스피릿 군사훈련을 중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남북 공동 비핵화 선언을 상기하면서 굳건한 한·미 동맹 발전과 한반도 안전을 역설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