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이 역사가 될 순간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유독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사건이 많았습니다. ‘미투’ ‘사법 농단’ ‘웹하드 업체 회장의 엽기 갑질’ 등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들이 뉴스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쿡기자는 수많은 사건 중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0여년이 지난 뒤에야 승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현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감동은 잠깐, 감정은 곧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측 대법원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본의 태도 때문입니다.
지난 25일 일본 공영 방송 NHK에 따르면 모로코를 방문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일본 기업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조치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만일의 경우에는 대항 조치나 국제 재판을 포함한 수단을 취할 준비는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 측 변호인단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자산 압류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힌 것에 반감을 드러낸 것입니다. 반성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되려 일본은 ‘국제법 위반’을 들먹이며 한국에 잘못을 물었습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춘식(94)씨 등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본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한일 협정권’에 있습니다.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됐다는 입장인데요. 강제동원 판결이 나온 직후 고노 외무상은 “이번 판결은 명백히 한일 청구권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일본 기업에 대해 부당한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본이 진 빚은 강제동원 뿐만이 아니죠.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90) 할머니 등 5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1인당 1억~1억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이후 일본은 반발, 총 3차례에 걸쳐 항소했습니다.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피해자의 승리였습니다.
지난 14일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이귀녀 할머니가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남겨진 피해자는 25명뿐입니다. 평균 나이가 92세인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도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적반하장격인 일본의 모습에 정신대 피해자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습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불편한 역사로 양국 간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강제동원에 대한 첫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2달이 다 돼 갑니다. 일본의 사과는 없었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만 손꼽아 기다리는 강제징용 및 정신근로대 피해자들의 한(恨)은 커져만 갑니다. 새해에는 일본의 진정 어린 사과를 기대해봅니다.
신민경 기자 smk503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