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르가즘 입문했다" 소리에 빠진 사람들

"귀르가즘 입문했다" 소리에 빠진 사람들

"귀르가즘 입문했다" 소리에 빠진 사람들

기사승인 2019-01-10 05:00:00

#“들으면 확실히 ‘힐링’이 돼요. 마음이 편해진달까. 잠이 안 올 때도 도움이 되고요. 요새는 친구들끼리도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에 대해 자주 얘기해요. ‘어떤 영상이 좋더라.’ 추천해 주고요. 공통의 관심사인 것 보니 역시 대세구나 싶어요.” 30대 직장인 전모씨는 매일 밤 ASMR 영상을 보며 일과를 마친다.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 ‘와그작’ 갓 튀긴 치킨 먹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단순한 감각이 아니다. 청각은 이제 현대인에게 유희와 위로를 주는 ‘정서’가 됐다. ‘귀’와 ‘오르가즘’의 합성어 ‘귀르가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귀르가즘은 귀로 느끼는 희열을 뜻한다. 대표적인 귀르가즘 유발 콘텐츠는 자율감각 쾌락반응을 뜻하는 ASMR 영상이다. ASMR 영상은 약 8년 전부터 미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바람, 파도, 새 등 자연의 소리를 주로 담았던 ASMR은 요리, 식사, 대화 등 일상의 소리까지 범위를 넓혔다. 

ASMR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다. ASMR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크리에이터들이 다수 생겼다. 구글에서 ASMR을 검색한 결과 약 7420만개 동영상이 검색됐다. 별다른 장비 없이도 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도전하는 이들에게 진입장벽이 낮다. 

대표적인 사례로 초등학생 유튜버 ‘띠예’를 들 수 있다. 띠예의 채널 구독자 수는 무려 67만에 달한다. 띠예가 2달 전 올린 바다포도 ‘먹방’ 영상은 9일 기준 누적 조회수 930만을 기록했다. 별다른 촬영 장비도 없이 이어폰 마이크를 스카치테이프로 얼굴에 고정한 게 전부다. 4분47초 동안 이어지는 영상에서 띠예는 아무 말 없이 젓가락으로 바다포도를 집어 먹는다. 얼음도 씹어 먹는다. 영상은 오로지 바다포도가 입속에서 ‘톡톡’ 터지는 소리에 집중한다. 네티즌들은 “언제 들어도 너무 소리가 좋다” “이 영상을 벌써 몇 번째나 반복해서 보는지 모른다” 등 열광적 반응을 보였다.

ASMR 열풍이 분 가장 큰 이유는 현대인들이 소리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기 때문이다. 오로지 청각에만 집중하면서 안정감이 들고, 긴장감이 해소되며 더 나아가 숙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ASMR을 들으면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의견도 있다. ASMR이 ‘백색소음’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백색 소음은 넓은 주파수 범위에서 거의 일정한 주파수 스펙트럼을 가지고 전달되는 소음을 뜻한다. 사람들이 잡담을 나누거나 찻잔이 부딪치는 소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 2012년 미국 시카고대 소비자연구저널은 50~70데시벨(dB)의 소음은 완벽하게 조용한 상태보다 집중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유튜브 뿐일까. 서점가에서도 현대인의 귀를 사로잡는 콘텐츠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디오북’이다. 말 그대로 글을 읽어주는 오디오 북은 ‘보는’ 콘텐츠의 대명사 책을 ‘듣는’ 문화로도 발전시키고 있다. 오디오북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국내 최대의 한 오디오북 제작업체에 따르면 오디오북 유료 이용 회원 35만 명 가운데 20대가 38%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배우, 가수, 작가 등 인지도 있는 인물들이 낭독자로 나서 청자의 관심을 더하고 있다.

반응도 뜨겁다. 지난달 30일 팟캐스트 업체 ‘팟빵’은 오디오북 1만권 이상 판매기록을 달성했다. 네이버도 유료 오디오북 서비스를 개시한 지 약 한 달 만에 5000권 판매를 기록했다. 오디오북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다. 전자책 분석 전문 사이트 ‘굿이리더닷컴’은 세계 오디오북 시장이 2013년 20억달러에서 2016년 35억달러로 연평균 20.5% 성장했다고 밝혔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소장은 현대인들이 청각에 집중하는 이유으로 ‘휴식’을 꼽았다. 김 소장은 “무한경쟁 사회다 보니 우리가 살면서 여러 가지 자극을 많이 받는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라며 “평화롭고 단조로운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잊으려 하는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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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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