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탄희(41·사법연수원 34기) 수원지법 안양지원 판사. 그는 지난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던 중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열기로 한 학술대회를 견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사직서를 냈던 인물입니다. 법원행정처는 이 판사를 원 소속인 수원지법으로 복귀시켰고, 발령 취소 배경에 대한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사법 농단 사태를 촉발한 이 판사가 최근 두 번째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이 판사는 30일 법원 내부전산망(코트넷)에 11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무리 짓는 자신의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법관이 추종해야 할 것은 사적인 관계나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적인 가치입니다. 가치에 대한 충심이 공직자로서의 명예라고 생각합니다.…판사가 누리는 권위는 독립기관으로서의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원으로 전락한 판사를 세상은 존경해주지 않습니다. 미래의 모든 판사가 독립기관으로서의 실질을 찾아가길 기원합니다.”
독립적이지 못한 조직, 정의롭지 못한 지시가 어디 사법부에 국한된 이야기일까요. 조금 비약해본다면, 불의는 도처에 있고 비양심이 우리의 소신을 뒤흔드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서 보여준 이 판사의 선택은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부당함에 용기를 내는 것, 정대한 삶을 사는 것, 소명과 원칙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판사의 말대로 옳은 선택, 그러니까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는 끝없는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판사가 된 이상 가장 좋은, 소명 의식을 가진 그리고 이상이 있는 판사가 되고 싶었다는 이 판사. 직무에 있어 그의 평가는 분분할지 모르겠으나, 사법부를 불신하는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으로 법과 정의를 지키는 법관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희망 말이죠. 그의 바람대로 그는 정말 좋은 판사였네요.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