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들이 공산주의자를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자전적 고백이 담긴 ‘처음 그들이 왔을 때’라는 시의 첫머리입니다. 화자는 나치가 공산주의자, 유대인, 노동조합원을 숙청할 때 침묵했다고 고백합니다. 엄혹했던 시대상을 보여주는 시로 널리 읽혔습니다. 이후 공산주의자, 유대인 등 침묵의 대상은 불치병 환자, 장애인으로 바뀌어서 암송되기도 했죠.
2019년 대한민국에서 니묄러의 시가 다시 쓰인다면 어떻게 바뀔까요. 바뀌지 않을 부분은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흘렀어도 노동조합(노조) 관련 문제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조의 지난한 싸움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습니다.
22일 잊혔던 이름, ‘콜텍’이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콜텍 노사는 이날 정리해고자 복직에 합의했습니다. 무려 13년 만의 일입니다. 콜텍 노조는 지난 2007년 사측의 정리해고에 반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서울고법은 지난 2009년 정리해고 당시 “경영상의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2년 양승태 대법원은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 중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로 기록됐습니다. ‘사법농단’의 피해자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륭전자 노조입니다. 지난 2005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200명은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됐습니다. 이후 고공·단식농성 등 1895일의 투쟁 끝에 노사는 2년 6개월 뒤 재고용과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복직한 노동자들은 업무를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사측은 같은 해 12월 노동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회사 문을 닫고 임금지급을 거부했습니다. 회사를 다시 잃은 노조원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유성기업 노사분규도 지난 2011년부터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1월 “유성기업 소속 노동자에 대한 설문과 인터뷰 등을 현장조사 결과, 유성기업 사태로 제1노조원의 정신건강 상태는 크게 악화됐다. 소속 노조와 상관없이 보더라도 많은 노동자들이 광범위한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와 충남도는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노동자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노사간 협상은 중재 이후 단 한 번밖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노사 간 협상 관련 공문은 수차례 오갔습니다. 노조 측에서 사측 협상자의 대표성을 지적, 논의는 공전 중입니다. 사측에서는 인권위의 권고에 대해 “의학적인 조사결과가 아니다. 제1노조원 중 정신건강 고위험군은 2.7%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 보건복지부 한국인 평균 정신질환 1년 유병률(11.9%)보다 낮다”며 행정심판을 제기한 상황입니다.
지난한데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노조 문제에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마 이 글을 다 읽지 않고 넘기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외면이 불러올 결과는 참담합니다. 콜텍은 13년을 싸웠지만 기륭전자, 유성기업은 몇 년을 더 투쟁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이들의 해고 사례는 선례로 쌓여 다른 노동자에게 어떻게 적용될지 모를 일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니묄러 시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답답하더라도 노조 문제를 관심 있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