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거 15세 맞아요?”
지난달 28일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언론시사회가 끝난 직후 영화를 극찬하던 후배 기자가 물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15세 관람가가 맞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영화엔 분명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어울리는 선정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포함돼 있었거든요. 개봉 이후에도 비슷한 고민은 이어졌습니다. 부모님과 보기에 불편한 장면이 없는지 묻는 지인에게 15세 관람가 등급을 믿고 편하게 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15세 관람가 등급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15세 논란’은 지난달 30일 ‘기생충’ 개봉 이후 시작됐습니다. 포털사이트 영화평과 기사 댓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15세 관람가가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반응이 연이어 올라왔습니다. 영화를 본 네티즌들은 “영화는 좋은데 등급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어떻게 15세 등급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15세 등급은 아닌 것 같다”, “15세 등급이라는 게 놀랍다” 등의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와 함께 극장을 찾은 부모들이 난감해했다는 목격담도 들립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영화계가 의도적으로 ‘기생충’을 밀어준다는 음모론이나 로비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 근거 없는 의혹이지만, 그만큼 15세 관람가 등급이 이해되지 않는단 얘기겠죠.
영화의 등급은 보통 개봉 한두 달 전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기생충’도 칸 영화제에 초청되기 전인 지난 4월 1일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죠. 영등위는 ‘주제,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 7가지 요소가 영상물에서 지속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됐는지를 심사합니다. ‘기생충’의 경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을 일부 인정하지만, 제한적인 수준이고 노골적인 표현은 아니라고 영등위는 판단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의 장면이란 것이죠.
‘기생충’과 같은 15세 관람가로 방송 중인 tvN ‘아스달 연대기’도 최근 잔인한 장면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 1일 방송된 첫 회에는 뇌안탈족 사냥꾼 라가즈(유태오)가 홀로 다수의 사람족과 맞서 싸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라가즈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방식은 다소 잔혹했습니다. 사람의 가슴을 뚫고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꺼내는 장면과 한쪽 다리가 뜯겨 하늘로 날아다니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갓난아이의 팔을 칼로 베어 피 색깔을 확인하는 장면도 나왔습니다.
‘기생충’처럼 ‘아스달 연대기’도 15세 등급이 맞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해당 장면들을 언급하며 15세 관람가가 맞는지 의구심을 드러낸 네티즌들도 많았습니다. 드라마의 등급을 결정하는 방식은 영화와 조금 다릅니다. 사전 심의를 거치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방송사에서 자체적으로 등급을 정하고 방송합니다. 이후 문제가 되는 사안들은 방송심의위원회의 안건에 올라 사후 심의를 받는 구조인 것이죠.
과거엔 영화 등급을 둘러싼 논란의 경우 대부분 검열이 문제였습니다. 영화의 개봉을 막기 위해 사전 심의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았죠. 심의가 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흘렀습니다. 작품에 19세 등급의 빨간 딱지가 붙으면 제작자들의 수익 저하로 이어지고, 그것이 예술인들에게 더 순화된 표현 방식을 간접적으로 강요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최근엔 정반대의 흐름입니다. 오히려 등급의 장벽이 너무 낮아져서 논란이 되는 것이죠. 지난해 2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영등위 7기 위원들이 이전보다 관대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독전’, ‘마녀’ 등은 마약과 폭력 등 자극적인 장면과 설정에도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감독들도 15세 등급을 받을 줄 몰랐다는 말을 할 정도였죠.
이번 논란이 발생한 건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된 등급의 선이 예전 기준에 맞춰졌기 때문일 모릅니다. 그 예전 기준이 정답인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다만 영등위가 이 같은 대중의 반응을 의식할 필요는 있습니다. 등급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나 변화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고작 아홉 명의 영등위 위원이 대중을 억지로 선도하는 모양새가 되는 건 문제이지 않을까요. 넘지 말아야 할 등급의 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