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치로 국회가 두 달째 공전 중인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국회 단독소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른시일 내 정상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민주당 단독소집 국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변인은 10일 오후 브리핑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지난주에 비해 (국회정상화) 합의 관련부분은 상당히 많이 진행이 됐다”면서도 “오늘 내일 중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결단을 내리고 플랜비(단독소집)로 가야할 것인가를 지금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당의 국회 단독소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헌법 47조에서는 국회 소집 요건을 ‘재적의원 4분의1 이상(75명) 집회 요구’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128명)과 자유한국당(113명) 등 대규모 정당은 다른 당의 협조 없이 홀로 소집이 가능하다.
◇ 정쟁상황마다 ‘보여주기식’ 국회 단독소집=국회 단독소집은 13대 국회인 1990년 민주자유당(한국당 전신)을 시작으로 국회임기(4년) 때마다 이어졌다.
당시 국회는 조기총선과 지자체 선거의 동시실시를 요구하던 평화민주당의 사퇴로 파행을 겪던 중이었다. 평민당이 4석의 상임위원장직을 요구하며 국회 후반기 의장단의 선출이 미뤄지자 민자당은 국회 단독소집을 강행했다. 14대 국회에서도 같은 이유로 여야가 대립하며 민자당이 6월과 8월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단독 제출했다.
여소야대로 극심한 대치를 이루던 15대 국회에서는 제1야당인 한나라당(한국당 전신)이 17차례나 국회를 단독으로 소집했다. 역시 여소야대이던 16대 국회에서도 한나라당의 단독소집 요구가 많았다.
17대 국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를 두고 여야가 갈등을 겪던 중 한나라당의 단독소집이 있었다. 18대 국회에서는 2009년 한나라당이 6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비정규직·미디어법 처리를 시도했다. 이에 반대하던 새천년민주당(민주당 전신)은 본회의장 앞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였다.
◇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고려한 방탄국회 지적도=국회법 5조 2항(짝수달 임시회를 자동으로 열게 한 조항)과 헌법44조(국회의원 불체포특권)는 ‘국회의 의사진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여야 정쟁상황과 상관없이 국회의장과 여야 3당 교섭단체 대표는 매해 짝수달(2,4,6,8월)에 국회를 여는 운영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또한 국회가 열리는 회기 동안에는 국회의원이 죄를 지어도 곧바로 체포되지 않는다. 체포동의안의 본회의 표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이 국회 단독소집의 이유로 해당 조항을 언급하다 보니 국회소집의 이유가 자당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종종 제기된다.
19대 국회인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이 8월 국회를 단독소집하자 입법로비 청탁과 금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던 신계륜, 신학용, 김재윤 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위해 회기를 시작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지난해 한국당도 6월 임시국회를 단독소집하자 당시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을 받는 권성동 의원의 구속영장 집행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비판을 받았다.
실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헌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정부에서 제출한 국회의원 체포동의안(구속동의안 포함)은 모두 61건이었으며 이중 21.3%인 13건만 통과됐다.
◇ 국회 열려야 하지만…단독소집, 실익 있나=단독소집 국회가 ‘보여주기식’ ‘방탄국회’라는 지적을 받는 건 정당 단독으로 열린 국회는 많은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국회정상화의 주목적인 추가경정예산의 처리가 불가하다.
추경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에 앞서 정부 시정 연설과 소관 상임위원회의 심사, 예산결산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운영위원회에서 국회의장 권한으로 시정연설 일정을 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임위와 예산결산특위에서까지 다른 당의 협조 없이 안건을 심사하기는 어렵다.
특히 바른미래당도 한국당을 제외한 국회 소집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실익없는 국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단독소집을 한다고 해도 한국당이 없는 상태에서는 진행되는 게 없지 않나”라며 “한국당이 들어와야 정상진행이 되지, 민주당이 단독 소집한다고 바른미래당이 오케이하고 들어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민주당 박찬대 대변인도 “한국당의 동의를 받지 않고 국회를 열면 개문발차지 않나. 그럼 우리가 그토록 간절한 추경처리는 상당히 요원해진다”면서 “시정연설은 의장의 권한이 상당히 있지만 예결위원장을 뽑지 않은 상태라 추경을 확정짓기는 어렵다. 이런 여러 가지가 걸려있는 상황이라 오늘 내일은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지 않나 싶다”고 전했다.
엄예림 기자 yerimuh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