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손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진범’(감독 고정욱)의 관객은 이러한 질문을 품고 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의 남편과 용의자의 아내가 함께 ‘진범’을 찾기 위해 공조 아닌 공조를 펼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살인사건 현장을 비추며 시작된다.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뛰어들어 친구의 안위를 살피던 준성(오민석)은 얼마 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다. 절친한 친구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든 영훈(송새벽)에게 준성의 아내 다연(유선)은 남편의 결백을 주장하며 도움을 청한다.
서로의 집에 서슴없이 드나들 정도로 두터운 믿음을 가졌던 영훈과 다연은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점차 커지는 의심을 마주한다. 여기에 뜻밖의 목격자 성민(장혁진)이 등장하며 살인이 벌어진 그날의 진실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든다.
‘진범’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네 사람의 상반된 주장과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촘촘하게 풀어낸 스릴러 영화다. 살인사건에 엮인 네 명의 인물은 저마다 다른 의심과 믿음을 가지고 있고, 각자 다른 목적을 위해 치열하게 움직인다. 단편영화 ‘독개구리’를 통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고정욱 감독은 장편영화 데뷔작에서 섬세한 심리묘사로 기량을 발휘했다. 속도감 있는 전개 대신 느리지만 끈질긴 관찰과 질문을 통해 천천히 진실에 접근한다.
연극 같은 연출 속에서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는 유독 돋보인다. 배우 송새벽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영훈 역을 그만의 화법으로 풀어냈다. 배우 유선은 다층적인 다연의 심리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해 영화에 개연성을 불어 넣는다. 다연의 남편이자 유력한 용의자인 준성 역의 오민석은 짧은 순간, 제한된 공간에서 연기를 펼치며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영화는 절정에 닿으며 관객이 처음 품은 의문에 관한 답을 내놓는다. 그곳엔 진범이 있지만, 진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뒷맛이 개운하진 않다.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운이 남는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영화 초반 살인사건 피해자를 그리는 연출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는 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