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소재를 건드리던 드라마가 정치에 손을 뻗었다. ‘정치 드라마’ 하면 떠오르는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2019년에 맞는 새로운 설정과 구도를 선보이며 “정치 얘기는 재미없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현재 방송 중인 JTBC ‘보좌관’과 tvN ‘60일, 지정생존자’다. 매주 금, 토요일 오후 11시 방송 중인 ‘보좌관’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정치 무대 뒤에서 실제로 세상을 움직이는 정치 플레이어들의 위험한 도박, 그리고 권력의 정점으로 향하는 보좌관 장태준(이정재)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 드라마다. 두 시즌으로 나눠 10부씩 방송된다. 매주 월, 화요일 오후 9시30분 방송되는 ‘60일, 지정생존자’는 미국 ABC와 넷플릭스에서 방송된 원작 ‘지정생존자’를 한국 실정에 맞게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관, 차관을 모두 잃은 상황에서 홀로 살아남은 환경부 장관 박무진(지진희)이 60일간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정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박무진이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고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내용이 그려진다.
‘보좌관’은 이상적인 정치인 대신 현실적인 보좌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차별화를 꾀했다. 보좌관 장태준과 그가 모시는 4선 국회의원 송희섭(김갑수)는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던져 헌신하고, 거짓과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 무대에서 진실과 진정성으로 위기를 극복해가는 기존 정치 드라마 주인공과 거리가 멀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밑바닥부터 성장해온 장태준의 무서운 성공 욕구가 드라마 서사의 중심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 드라마 주인공 같은 국회의원 이성민(정진영)은 오히려 드라마의 중심에서 한발 빗겨서 있다. 드라마에선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분명 현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장태준 보좌관이 어떤 국회의원으로 성장할지 지켜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다.
‘보좌관’이 신선한 주인공을 내세워 다른 시점의 정치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60일, 지정생존자’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꿈 같은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대통령을 비롯해 기성 정치인들이 모두 사망하는 테러 사건이 발생한다는 드라마의 설정이 곧 드라마의 시작이자 끝이다. 정치와 크게 관련 없는 평범한 국민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 하는 뻔한 이야기가 실제 법 조항을 근거로 한 아이디어 하나로 그럴듯한 현실 속 이야기가 된다. 테러 이후 어지러운 상황을 하나씩 해결해가는 권력 없는 대통령 박무진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내가 저 상황에서 박무진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관점을 제시하면서 무관심했던 정치 속 세계로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지난 4~5월 방송된 KBS2 ‘국민 여러분!’과 방송 예정인 tvN ‘위대한 쇼’도 국회의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정치 드라마다. ‘국민 여러분!’은 경찰과 결혼한 사기꾼 양정국(최시원)이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려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위대한 쇼’는 국회의원 출신 위대한(송승헌)이 문제투성이 사남매를 받아들이며 국회 재입성을 위해 ‘쇼’를 벌이는 이야기다. 두 작품 모두 기존 진중하고 무거운 정치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밝고 경쾌한 톤으로 정치인 이야기를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좌관’ 연출을 맡은 곽정환 PD는 지난달 13일 열린 ‘보좌관’ 제작발표회에서 “우리 삶에 어느 부분이든 정치적인 요소가 다 존재한다”는 말을 했다. 정치가 국회나 청와대 같은 특정 공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닌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로 본 것이다. 곽 PD는 “이 드라마를 정치 드라마로 생각하진 않는다”며 “가족이나 동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정치적인 현상과 비슷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경쟁이나 대립, 대화와 화해가 필요한 일이 굉장히 많다. 그런 우리 삶과 비슷한 요소들이 시청자들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