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네 편의 드라마가 함께 출발하며 수목극 대전이 시작됐다. 지난 17일 첫 방송한 KBS2 ‘저스티스’ MBC ‘신입사관 구해령’ SBS ‘닥터탐정’ OCN ‘미스터 기간제’는 각각 선명한 색을 앞세워 시청자를 만났다. 작품마다 특징과 장·단점이 분명한 만큼 선택은 취향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 SBS 수목극 ‘닥터탐정’
하청업체 소속으로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정하랑(곽동연)은 자신이 TL메트로 정직원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상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업무 과중은 물론, 스크린도어 세척제와 중금속, 분진에 중독돼 피부엔 발진이 생기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일도 다반사다. 여느 때처럼 홀로 스크린도어를 살피던 그는 몸을 지탱하던 손에 힘이 빠져 선로에 떨어지고, 돌진하던 지하철에 치여 숨을 거둔다. TL메트로의 모 회사인 TL그룹은 사건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정하랑의 사정을 아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도중은(박진희)과 미확인질환센터 수석연구원 허민기(봉태규)는 끓어오르는 슬픔과 분노에 정신을 가누지 못한다.
이은호 기자
볼까 : ‘닥터탐정’ 1·2회를 보고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 발생한 하청노동자의 사망 사고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대본을 집필한 송윤희 작가는 산업의학전문의 출신으로, 애초 구의역 사고를 모티프로 이 에피소드를 썼다고 한다. ‘닥터탐정’이 던지는 화두는 현실에 뿌리를 둔 이야기이기에 더욱 묵직하다. ‘닥터탐정’은 정아랑과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불공정한 구조가 만들어낸 여러 피해자를 두루 조명한다. 노조에 소속돼 TL메트로 정직원 후보에서 제외된 정아랑의 동료, 정아랑을 사지로 내몰았으나 정아랑의 죽음에 그 자신도 몹시 괴로워하는 고 부장 등이다. 그리고 작품이 겨눈 칼끝에는 불공정한 구조가 있다. ‘사회고발극’으로서, ‘닥터탐정’의 활약을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말까 : ‘폭풍 전개’로 설명되는 최근 몇 년간의 드라마 진행 추세와 비교하면 속도감이 떨어진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첫 방송한 KBS2 ‘저스티스’가 시작부터 성폭행, 살인사건 등을 쏟아낸 것과 비교하면, 몰입감이 덜하다고 느낄 수 있다. 도중은과 TL그룹의 갈등 관계가 다소 식상하게 보인다는 것도 ‘닥터탐정’의 맹점이다. 특히 전문 직업인인 도중은이 이혼한 남편 사이에서 난 딸 때문에 망설이는 모습은 다소 고루하게 보인다. 산업재해를 소재로 다루는 데다, 모든 에피소드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기 어렵다. 오락거리로 즐길 만한 작품을 찾는다면, ‘닥터탐정’이 좋은 선택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세현 기자
볼까 : “전에 본 적 없는 드라마”라는 출연 배우의 표현이 맞았다. “날 것 같다”라는 감상도 적확했다. 산업환경 현실을 직시하는 드라마다. 둘러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한국적인 정서도 녹였다. 역사극이 아님에도 다음 일을 짐작할 수 있어 비극이다. 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이 드라마의 동력을 담당하는 것은 현실에 없는 가상 기관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만든 PD와 직업환경전문의인 작가가 만들어낸 미확진질환센터의 활약이 궁금하다. 가상의 활약은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말까 : 다큐멘터리와 장르물, 통속극이 번갈아 등장한다. 잘 조율한다면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큰 장점이 되겠지만, 잘못 섞인다면 애매한 색을 가질 수도 있겠다. 첫 회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좋았지만, 상황 설정이나 사건의 발생이 연속해서 우연에 기댔다는 인상이 있다.
■ KBS2 수목극 ‘저스티스’
스타 변호사 이태경(최진혁)과 건설사를 운영하는 송우용 회장(손현주)은 고위층 인사의 각종 범법 행위를 수습하고, 그 대가로 막대한 부를 쌓아왔다. 송우용은 사업을 위해 건달 양철기(허동원)의 폭력 사건 변호를 이태경에게 부탁하고, 재판을 준비하던 이태경은 뜻밖의 진실과 마주한다. 양철기가 미제로 남은 7년 전 신인 배우 살인사건 유력 용의자이며, 이 사건이 자신의 동생 이태주(김현목)의 죽음과도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태경의 옛 연인이자 검사인 서연아(나나) 역시 양철기 사건 뒤에 거대 세력의 음모가 있음을 눈치채고 재판에 뛰어든다.
이은호 기자
볼까 :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는 이태경의 과거가 흥미를 자극한다. 이태경이 이태주 죽음의 비밀을 풀어가면서, 그가 스스로 저버렸던 정의감을 되찾는 과정이 그려질 것으로 기대된다. ‘절대 악’으로 묘사된 송우용과 지략가인 이태경 사이의 줄다리기가 이 작품 주요 재미가 될 전망. 연기 구멍이 없다는 점도 ‘저스티스’의 장점이다. 10년 만에 KBS로 돌아온 손현주는 작품에 서늘함을 드리우고, 최진혁 또한 여유 있게 제 몫을 해낸다. 무엇보다, 이 작품 제목이 ‘정의’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소개에 따르면 이태경은 복수를 이뤄내려 불의와 손잡고, 송우용은 가족을 위해 괴물이 됐다. 그러나 복수와 가족은 그 자체로 정의나 선(善)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저스티스’는 어떻게 ‘정의’를 논할 것인가.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보여줘야 할 내용이다.
말까 : ‘영화 같은 드라마’에 대한 욕심이 과했다. 몇몇 장면에선 ‘지상파도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야심이 읽히는데, 폭넓은 시청자를 아울러야 하는 지상파에겐 ‘무리수’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 신인 배우 살해 현장을 묘사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1회 초반의 성폭행 장면 역시 필요 이상으로 구체적·폭력적이었다는 인상을 준다. 한 가지 더. 이태경과 송우용을 필두로 1·2회에 등장한 대부분의 남성 캐릭터들이 자신의 욕망을 갖고 움직인 반면, 여성 캐릭터 가운데 분명한 동기를 지닌 인물은 서연아 한 명뿐이었다. 그 외의 여성들은 범죄의 피해자이거나 윤락업소 직원이었다. 회사 고위직이 모두 여성이고 그들 간의 정치 싸움을 동력 삼는 작품(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 인기인 마당에, 이건 좀 구식이지 않나.
인세현 기자
볼까 : 올해 방영한 드라마 중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이다. 이후의 전개도 그렇다. 변호사가 등장하는 한국 장르물서 식상해진 장면들을 다른 각도에서 다르게 선보인다. ‘닥터 프리즈너’와 마찬가지로 작품만 봐선 KBS라는 채널을 떠올리기 힘들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데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악마와 거래한 변호사 이태경 역의 최진혁과 스스로 악마가 된 송우용을 연기하는 손현주의 연기 대결이 볼만하겠다. 검사 서연아로 분한 나나는 극 중 대사처럼 여전히 멋있다.
말까 : 아무리 입체적이고 사연이 있다 해도 주인공이 나쁜 것을 참기 힘들다면 첫 편을 보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웃을 구석이 거의 없는 진지한 분위기와 사회문제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장르에 손이 가지 않는 시청자라면 채널을 돌리는 것이 좋다.
이은호 기자·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