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산악부에서 활동했던 용남(조정석)은 지금은 동네 놀이터에서 철봉 운동이나 하며 집에 붙어있는 백수다. 온 가족이 참석한 어머니 현옥(고두심)의 칠순 잔치에서 용남은 연회장 부지점장으로 취직한 동아리 후배 의주(윤아)를 만나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잔치가 끝나갈 무렵, 의문의 유독가스가 서울 도심 곳곳으로 퍼지는 대형 재난이 발생한다. 건물에 갇힌 용남의 가족과 의주는 옥상으로 대피하기 위해 올라가지만 문이 잠긴 상황. 용남은 동아리 시절 쌓아둔 체력과 암벽등반 기술을 사용해 난관을 돌파하기로 결심한다.

‘엑시트’(감독 이상근)는 코미디와 재난, 액션을 고루 섞어 무엇이 주력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영화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장면이 아닌데 눈물이 나고, 웃긴 장면이 아닌데 웃음이 터진다. 결말 역시 예상 가능한대로 흘러가지만 예상 못한 그림을 보듯 감상하게 된다. 굳이 표현하자면 아무 데도 쓸모없다고 느껴졌던 능력이 재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현실 히어로 장르에 가깝다.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영화다. 한국적인 정서와 사회적 분위기,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소재들을 이용해 드라마와 서스펜스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전혀 다른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나 단순한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보게 하는 힘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신선한 소재들이 하나씩 등장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는 관객에게 마음 놓고 즐겨도 괜찮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가진 것 없고 꿈도 없는 청춘을 상징하는 두 주인공을 그리는 영화의 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영화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책임지는 용남과 의주의 앞으로, 위로 달려나가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보다 끝도 없이 돌파해 나가는 패기와 돌파력이 현실 히어로의 진짜 능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몇몇 장면을 통해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감독의 세심함 역시 돋보인다.

배우 조정석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적재적소에서 보여주는 존재감과 리액션을 감상하다 보면 그가 영화 전체의 흐름과 캐릭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배우 임윤아는 두 번째 영화 만에 주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오는 31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