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불매운동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치솟는 온도계 눈금처럼 한껏 고양되고 있다. 지금 같은 시기엔 서울 율곡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석하거나, 서울 통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방문해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도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극장을 방문해 영화 ‘봉오동 전투’나 ‘김복동’을 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집 밖으로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이라면? 방법은 있다. 방구석에 누워 일제강점기 영화 혹은 드라마를 몰아보며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 주제와 완성도, 시대를 구분해 엄선한 보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질 ‘방구석 애국 투어용’ 작품 다섯 편을 소개한다.
△ tvN ‘미스터 션샤인’ (2018년 7월 7일 ~ 2018년 9월 30일 방송, 24부작)
1871년, 신미양요 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 방송 당시엔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의 세 번째 만남, 배우 이병헌과 김태리의 캐스팅 등 작품 외적인 요소로 화제를 모았다. 두 주인공의 운명적인 로맨스를 다룬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이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의병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특히 지금까지 영화, 드라마로 다뤄지지 않은 1870년대~1900년대를 다룬 점도 눈에 띈다. 미국 국적의 한국인, 일본의 입장에선 한국인, 한국에 머물던 일본인 등 당시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조국을 위해 활동하던 의병들의 활약에 주목할 만하다.
△ MBC ‘이몽’ (2019년 5월 4일 ~ 2019년 7월 13일 방송, 20부작)
지난해 ‘미스터 션샤인’이 있었다면, 올해는 ‘이몽’이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인 손에 자란 조선인 의사 이영진(이요원)과 무장한 비밀결사 의열단장 김원봉(유지태)이 펼치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200억원대의 제작비를 들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놓치고 조용히 종영한 작품이다. 하지만 최근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알려진 의열단장 김원봉의 스토리를 드라마에서 처음 다뤘다는 데 의의가 있다. 1930년대 김원봉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방식에 반감을 갖고 무장투쟁을 계획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2019년 2월 27일 개봉, 12세 관람가)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세 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에서도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고아성)과 함께 수감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3.1 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유관순 열사 가까이에서 우리가 몰랐던 실제 역사를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30명 가까운 여성들이 세 평 남짓한 좁은 감방 안에서 발목이 부을까 반시계 방향으로 걷고 또 걷는 장면, 말을 못하게 하는 간수에게 대항해 “우린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장면 등 보고만 있어도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영화다.
△ 영화 ‘동주’ (2016년 2월 17일 개봉, 12세 관람가)
일제강점기에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강하늘)와 몽규(박정민)가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1940년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 윤동주가 아닌 청년 윤동주가 어떤 환경에서 시를 써내려갔는지, 우리에게 낯선 독립운동가 송몽규는 어떤 청년이었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독립운동이나 3.1 운동 같은 커다란 주제 대신 그 시대를 평범하게 살아갔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 영화 ‘아이 캔 스피크’ (2017년 9월 21일 개봉, 12세 관람가)
20여 년간 8000건의 민원을 넣은 ‘도깨비 할매’ 옥분(나문희)이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우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일제강점기 시대를 재현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아이 캔 스피크’는 과거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왜 잊어선 안 되는지를 묵묵히 설득해내는 작품이다. 위안부 문제를 일부 개인의 일로 볼 수 없는 이유, 한국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를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목소리로 풀어낸다.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최초로 유엔인권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했던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 김복동 할머니를 모델로 만든 영화인만큼 상영 중인 영화 ‘김복동’과 함께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