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체인지업이다. 류현진(LA 다저스) 부진 탈출의 열쇠는 여기에 있다.
류현진은 5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4⅓이닝 6피안타 5탈삼진 3실점으로 무너졌다. 3경기 연속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지난 1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 포함 17.6이닝을 던지는 동안 무려 21실점했다. 그동안 평균자책점은 1점이 치솟아 2.45까지 올랐다. 이제는 2위 마이크 소로카(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격차가 0.08에 불과하다. 사이영상은 물론이거니와 방어율 타이틀을 지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현지 매체를 비롯한 대다수의 언론은 류현진의 부진 원인을 체력에서 찾고 있다.
류현진은 올 시즌 161.2이닝을 소화 중이다. 2013년 192이닝을 소화한 이후 최다다. 류현진은 6년간 2차례 수술대에 오르는 등 부상에 신음했다. 오랜만의 풀타임 소화로 체력적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는 추측에도 일리가 있다. 이때는 장기간의 휴식이 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류현진은 밸런스의 붕괴, 이로 인한 체인지업의 난조를 부진 원인으로 꼽았다.
류현진은 콜로라도전 종료 후 “투구 폼에 있어서 팔각도가 낮아진 것도 있고, 전체적으로 요즘 밸런스가 좋지 않다”며 “밸런스가 안 맞으니까 제구도 안 된다. 특히 내가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체인지업 제구가 안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날 류현진의 투구 밸런스는 불안정했다. 2회 초 라이언 맥마흔과 풀카운트 승부 끝에 시속 146㎞의 패스트볼을 던지자 발목이 꺾이며 마운드에서 쓰러졌다.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평소 류현진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날 해설을 맡았던 김병현 위원도 “공을 던진 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우는 등 투구폼의 균형을 잃었다. 마운드에서 여유롭던 평소 류현진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밸런스의 붕괴는 결국 류현진의 최대 강점인 체인지업의 제구에 영향을 미쳤다.
류현진은 “밸런스가 안 맞으니까 제구가 안 되고 있다. 특히 체인지업 제구가 안 된다”고 털어놨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도 “류현진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이 미세한 차이로 계속 높게 들어간다. 빅리거들을 상대로는 작은 차이가 판이한 결과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류현진의 체인지업 제구는 상승세를 달리던 시즌 초반과 대조된다.
위 그림은 류현진의 체인지업 분포도를 나타낸 것이다. 지난 6월 4일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을 보면 체인지업의 탄착군이 일정하고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하단에서 제구가 형성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지난달 29일 애리조나전에선 타자들이 타격하기 좋은 바깥쪽 중간으로 체인지업이 들어갔다. 콜로라도전도 다르지 않았다. 체인지업이 가운데로 몰리기도 했고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난 것도 상당히 많았다.
체인지업의 구위에도 문제가 생겼다. 낙차는 줄어들고 속도는 빨라졌다.
류현진의 올 시즌 초반 체인지업 구속은 적게는 76마일, 많게는 79마일 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전처럼 시원한 투구를 보여주지 못한 7월 마이애미전부터 체인지업 평균 구속이 80마일 대를 기록하더니 최근 애리조나전에선 81마일을, 콜로라도전에선 평균 구속이 81.8마일에 이르렀다. 이는 체인지업의 낙폭이 보다 밋밋해졌음을 의미한다.
스포츠넷LA의 해설자이자 다저스의 전설적인 투수인 오렐 허샤이저도 이를 지적했다.
그는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계속 똑바로 형성되고 있다”며 “최근 3경기에서 체인지업을 밀듯이 던졌다. 몸의 회전과 팔의 회전의 서로 어긋나 있으면 투구 때 팔이 미세하게 늦게 나온다. 이 경우 체인지업이 밀려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은 콜로라도전에서 체인지업을 총 22개 던졌다. 28구를 던진 포심(30.1%)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구종이었지만 아웃카운트 2개를 뽑아내는 데 그쳤다. 헛스윙은 단 한 차례밖에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난달 1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 전까지 류현진의 체인지업 피안타율은 0.168에 불과했지만 최근 4경기에서는 피안타율이 0.417로 치솟았다. 이러한 유의미한 수치를 감안하면 류현진의 주된 부진 원인 중 하나가 체인지업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국내에서 뛰던 당시 류현진은 체인지업으로 리그를 평정했다. 2013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엔 한계를 느꼈고 고속 슬라이더, 커터 등을 장착하며 위기를 타개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체인지업이라는 것엔 오랜 기간 변함이 없었다.
구속을 늘리거나, 새로운 구종을 장착하고 패턴을 바꾸는 것은 타개책이 될 수 없다. 체인지업을 정상 궤도로 시급히 끌어올리는 것이 부진 탈출의 해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객관적인 지표들이 제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력 혹은 몸 상태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는 것은 류현진의 밸런스가 시즌 후반, 그것도 갑작스레 무너졌기 때문이다. 만약 류현진이 정규리그 잔여 등판에서도 반등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의혹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류현진은 다음 시즌 FA(자유계약선수)를 앞두고 있다. 내구성에 대한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후반기의 심각한 기량 저하는 분명 향후 그의 몸값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다.
류현진이 그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험난하고도 중요한 한 달을 보내고 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