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소음까지도 안고 가야 한다. 그것이 프로다.
지난 29일 경북 구미 골프존카운티 선산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투어 DGB 금융그룹 볼빅 대구경북오픈’ 최종 라운드에서는 한국 골프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김대현과 공동 선두로 올라선 김비오(호반건설)은 티잉 그라운드에 들어서 티샷을 하는 듯 하더니 돌연 뒤쪽의 갤러리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이어서는 드라이버 헤드를 지면에 세게 내리치며 불만을 표출했다.
김비오는 KPGA 통산 5승, 2010년 대상과 신인상, 최저타수상에 이어 2012년 상금왕에 오른 대표적인 골프 스타다. 그의 돌발 행동에 대다수의 골프팬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김비오는 우승을 차지한 뒤 기자회견에서 “몹시 힘든 상황이었다. 몸이 너무 힘들어 캐디에게 호소할 정도였다. 우승 경쟁으로 예민했다”며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다. 다 내 잘못이다. 내 행동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당시 상황을 해명했다.
김비오의 언급처럼 이날 대회는 10여 명의 선수들이 경기 중반까지 1~2타 차 선두 경쟁을 펼칠 정도로 치열했다. 상상 이상으로 압박감과 부담감이 상당했을 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비오의 기행이 합리화 될 수는 없다. 이날의 김비오는 전혀 프로답지 못했다. 골프는 매너를 중시하는 스포츠다. 규칙 1장부터 '모든 플레이어는 골프의 정신에 따라 플레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본적인 골프 정신조차 어긴 사람은 다름 아닌 김비오다.
프로 스포츠는 팬이 있기에 존재한다. 팬이 없는 선수, 갤러리가 없는 골프 대회는 결코 있을 수 없다. 한국 남자 프로 골프의 부흥이 절실한 상황에서 최고의 스타가 도리어 흥행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날 대회장엔 주최 측 추산으로 7000명의 갤러리가 몰렸다. 대구, 경북 지역은 골프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하다.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지만 해마다 수도권보다도 많은 갤러리가 대회장을 찾아왔다. 자신의 플레이를 보러 찾아온 이들에게 김비오는 악몽만 남겼다.
미성숙한 국내 갤러리 문화를 탓하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물론 선수가 샷을 할 때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에티켓조차 지키지 않는 갤러리들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 김비오 역시 카메라 셔터 소리에 실수를 저질렀고, 분노했다. 프로 선수의 스윙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상황에 맞는 매너가 요구된다. 시도 때도 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떠드는 ‘민폐’ 갤러리들은 사라져야한다.
그럼에도 김비오의 행동은 도가 지나쳤다. 김비오와 우승 경쟁을 펼친 선수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노출됐지만 이 가운데 분노를 표출한 선수는 김비오 단 한 명뿐이었다.
프로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교한 샷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양궁의 경우 경기장 소음에 대비해 소음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정석이 됐다.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야구장을 찾아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활 시위를 당긴다. 샷 실수를 온전히 관중들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건 비겁하다.
KPGA의 ‘맏형’ 최경주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기장의 상황이 그렇다면 선수가 그에 맞춰 연습을 해야 한다”며 “스윙할 때 음악을 틀어놓고 하든, 다른 소리를 내도록 하든 경기장의 상황에 맞춰야 하는 것은 선수”라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이 너무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라며 “프로는 팬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팬이 있어야 선수가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