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촛불, 2016년 그날과 다르다..공감에서 분열로

지금 촛불, 2016년 그날과 다르다..공감에서 분열로

기사승인 2019-10-08 06:00:00

국민의 목소리, 광장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촛불’이 3년여 만에 다시 떠올랐다. 이번엔 한 곳이 아닌 광화문과 서초동 등 여러 장소에서다. 규모도 커졌다. 주최 측 추산 200만에서 500만. 임명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는 조국 법무부 장관 수호‧퇴진 요구와 사법개혁 촉구를 위해 각각 수백만의 촛불이 들렸다. 

이를 두고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혁명을 비롯한 민의를 대변했던 촛불집회들이 함께 거론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장소만 달라졌을 뿐 과거 탄핵 촛불을 연상시키는 규모와 시민의식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2016년 촛불과 지금의 촛불은 근본부터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한목소리로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 양 진영으로 나뉘어 팽팽히 맞서는 건, 그날의 촛불과 지금 촛불이 같은 의미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일각에서는 ‘반쪽촛불지지세력의 강력한 결집현상‘이라며 과거 촛불의 의미로부터 선을 그었다. 

◇ “내 집회는 국민의 뜻, 네 집회는 지지층 동원”=지난달 28일 ‘조국수호’‘사법개혁’ 서초동 집회, 지난 3일 ‘조국사퇴’ 광화문 집회가 열렸다. 5일 서초동에서는 ‘조국수호’ 촛불문화제와 맞불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이를 두고 여권과 야권은 집회참여자의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과 해석을 내놨다. 

민주당은 5일 열린 진보단체 주도의 촛불문화제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집회라는 점을 부각했다. 한국당은 여권이 주도한 관제집회라고 힐난했다. 이에 반해 3일 진행된 보수단체 집회에 대해서 한국당은 각자 일에 충실했던 중도우파 시민들이 나섰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군중을 동원한 집회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7일 최고위회의에서 “장소만 서초동일 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2016년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규모와 시민의식이 아닐 수 없다”며 “검찰 개혁을 향한 국민의 자발적 열망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같은날 최고위회의에서 “헤아릴 수 없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온 광화문 집회를 동원집회로 깎아내린 민주당은 자신들 동원령이 들킬까 봐 이런저런 지령도 내렸다”며 “관제 데모를 넘어선 황제 데모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 정치력 동원으로 얼룩진 광장 민주주의=이같이 ‘시민의 자발적 참여 여부’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는 이유는 양당이 ‘집회 참여독려’ 등 정치력을 동원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민주당의 한 지역위원회 관계자는 5일 열린 촛불문화제 참가자를 모집했다. 그는 ‘집회에 함께 가자’며 버스 탑승자를 모집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참여를 독려했다. 논란이 되자 당 차원에서 한 일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한국당은 소속 의원과 시·도당 위원장,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등에게 보낸 공문을 통해 3일 광화문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 공문에는 각 지역별로 당원과 민간 사회단체들을 동원시켜 참석 인원을 보고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 소속 직원들의 목소리를 전해주기 위한 취지로 개설된 ‘여의도 옆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동원을 의심하게 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지난 1일 계정 관리자로부터 인증 받은 한 국회 직원의 글에는 “이 끝없는 장외 동원집회, 어찌해야 끝날까”라며 “매번 각성을 요구하며 광화문을 산보하는 이 허례의식. 그 나이, 그 지위에 매번 숙제검사 받듯 ‘얼마왔어요’ 기록하고 사진찍어 증거보내고”라는 자조 섞인 내용이 담겨있다. 

3일 인증된 또다른 국회 직원의 글에는 “전국에서 당 조직 동원해서 곳곳에 버스 세워놓고, 불법주정차로 백화점도 못 들어가게 막아놓고는 시간당 만원짜리 알바 돈 준다고 글을 올리질 않나”라며 “그렇게 300만 모아서 자랑스러우신가”라는 내용이 담겼다.

◇ 2016년 그날의 ‘하나된 촛불’…2019년 지금은 ‘반쪽 촛불’=하나의 촛불이 양 진영의 촛불로 나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억울한 죽음을 맞은 효순·미선 양을 향한 추모 촛불(2002년 12월14일, 10만), 광우병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2008년 6월10일, 70만),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2016년 12월3일, 170만명)은 지금의 촛불집회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진영과 관계없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촛불집회는 양 진영으로 갈라진 ‘반쪽짜리 촛불’이란 시선이 적지 않다. 이종철 정치평론가는 “2016년 촛불혁명은 진보 지지층만의 힘으로 이뤄낸 게 아니다. 시작은 진보가 먼저 했지만 보수 지지층이 동참하지 않았다면 성공했겠는가”라면서 “촛불이 반쪽이 났다고 생각한다. 서초동 촛불만 2016년 촛불혁명의 전통성을 잇고, 광화문 집회는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병민 경희대(행정학과) 겸임교수도 “서초동 촛불문화제의 경우 ‘개싸움 국민운동본부’라는 문재인 정부 지지단체로부터 시작된 상황”이라며 “정치적으로 무관한 세력의 자발적 집회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단순한 검찰개혁 한 가지의 목소리보다는 진영논리로서 정부를 지켜야겠다는 위기감이 훨씬 크게 작동된 건 아닌가라는 생각 든다”고 했다.

엄예림 기자 yerimuh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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