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요. 즐거운 생각하면서 내 위주로 그렇게 살 겁니다.“
수개월간 유방암 투병 생활을 끝내고 최근 외래 진료실에서 만난 정다연씨(59세)는 "엄마로서 주부로서 임무는 내려놓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겨드랑이에 딱딱하게 만져지던 몽우리가 암이었다니. 정씨는 암 진단을 덤덤하게 받아들었다고 했다.
정씨는 이날 마지막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항암·방사선 등 주요 치료를 모두 마쳤으니, 이제 간헐적인 유지요법 치료와 정기 검진만 남은 셈이다. 힘든 투병생활 가운데 힘이 됐던 것은 의료진의 격려. 그는 “항암 치료 중 내성 때문에 고생을 했다. 그러다 마지막 8차 항암만 남겨두고 선생님께서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느냐, 고생 많았다고 위로해주시더라”며 “신랑도 그런 말을 안 하는데 의사선생님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정말 감사했다”고 전했다.
유방암은 우리나라 여성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 질환이다. 국내 암등록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유방암 발생률은 올해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섰으며, 유병률 또한 20만 명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40~50대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다. 폐경 이후인 50~60대 후반 유방암 발생이 높은 서구 국가와는 다른 양상이다. 사회생활과 자녀 양육 등으로 일도 바쁘고 책임도 막중한 시기에 유방암 진단을 받는 것이다. 일상 스트레스에 암투병의 고통까지 더해져 환자들의 어려움이 크다.
국립암센터 유방암센터장 이근석 교수는 “40-50대는 인생에서 굴곡이 많은 시점이다. 직장에서는 보통 상사와 부하 직원의 허리 역할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로서 역할도 큰 시점이다. 40대 후반인 경우 대부분 자녀가 중∙고등학생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특히 힘들어 한다”고 했다.
젊은 유방암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 받는 고통도 더 크다. 이 교수는 “유방암 치료에 쓰이는 항호르몬제는 여성호르몬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는데, 여성호르몬이 떨어졌을 때 가장 괴로운 것이 폐경 증상이다. 폐경이 오면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불면증이 오며,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60-70대 분들은 폐경을 이미 겪은 사람들이다. 자연 폐경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힘든 시기를 넘어온 분들이기 때문에, 여성호르몬을 막는 유방암 약을 처방해도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는 않는다”며 “40-50대 젊은 유방암 환자들이 유독 힘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진료실에서는 환자들의 마음을 보듬는 일이 빠지지 않는다. 이 교수는 “진료실을 찾는 환자분들에게 즐거운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한다. 항암치료는 쉽지 않은 과정이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는 것도 사실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권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환자 정씨의 담당 주치의이기도 하다. 정씨가 전한 감사인사를 전하니 “짧은 시간동안 환자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손사래를 쳤다.
정씨의 경우 유방암 3기로 진행이 공격적인 HER2 양성 유방암에 속했다. 이 교수는 “환자분처럼 HER2 양성 유방암인 경우에는 항암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항암과 함께 표적항암제를 투여 받으면 재발 위험이 더 줄어든다”며 “과거 HER2 양성 유방암은 삼중음성유방암 다음으로 재발률이 매우 나쁜 암으로 통했지만 현재 허셉틴 등 표적치료제가 개발돼 치료결과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정씨는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피하주사를 맞으면 된다. 이 교수는 "피하주사 제형인 허셉틴SC는 혈관을 찾을 필요 없이, 허벅지에 피하 주사하게 되며 소요 시간도 짧다. 그동안 정맥주사 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환자분들이 정말 좋아하신다. 주사를 맞고나서 통증도 금방 없어진다고 이야기한다"며 “현재 표적치료제와 병용요법을 사용하더라도 비용이 많이 줄고 급여도 일부 적용받아 환자 부담이 줄었다. 많은 유방암 분야 의사들과 환자들이 좋은 치료가 건강보험 적용을 더 받을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암·방사선 등 주요 치료가 끝난 환자들은 생활 속 관리가 관건이다. 꾸준한 운동과 취미생활, 그리고 골고루 잘 먹되 즐겁게 먹는 것이 좋다.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회복기간 동안 환자들이 풀어야하는 가장 큰 숙제다.
이 교수는 “운동량과 운동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욕심부리지 않고, 유산소 운동부터 하루에 30분 이상 하면서 운동량을 늘리면 좋다. 그리고 탄수화물을 제한하면서 체중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운동과 체중 조절이 여성호르몬 노출 기간을 줄이는 것과 연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꼭 여성호르몬 노출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면역력도 높아진다.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다양한 요인들이 재발 위험을 낮춘다. 따라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이 좋다”며 “40-50대 환자분들은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폐경도 겹쳐 감정기복이 심한데, 감정 관리를 잘 할 수 있다면 더 좋다. 운동과 함께, 환우회나 노래교실, 댄스교실 등 취미 활동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짜장면을 먹어도 되느냐‘는 환자분에게는 맛있게, 즐겁게 드시면 된다고 답한다. 음식이 건강 상태에 지장을 주는 것은 1% 미만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과식하지 않으면 된다”며 웃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