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초점] ‘웅앵웅’이 ‘남혐’이라는 ‘웅앵웅’

[쿡초점] ‘웅앵웅’이 ‘남혐’이라는 ‘웅앵웅’

기사승인 2020-01-08 13:27:56

‘웅앵웅’과 ‘쿵쾅이’는 동급이 될 수 있을까. 혹자는 그룹 트와이스 멤버 지효가 채팅 중에 쓴 ‘웅앵웅’이 ‘남혐’ 단어이며, 그래서 남성 아이돌이 여혐 단어인 ‘쿵쾅이’를 쓴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웅앵웅’이 실은 ‘남혐’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속 잘 들리지 않는 대사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설명도 이번 일이 ‘논란’으로 비화한 핵심을 꿰뚫지 못한다. 이 논란의 중심에는 여성 아이돌을 향한 온라인 폭력에 눈 돌리는 기만과 그들의 상냥하지 않을 권리를 무시한 부당함이 있다.

지효는 지난 6일 팬들과의 채팅에서 자신이 ‘2019 Mnet 아시안 뮤직 어워즈’(이하 MAMA) 도중 자리를 떴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꾸 ‘관종’(관심종자)같은 분들이 웅앵웅하시기에 말씀드리는데 그냥 몸이 조금 아팠어요.” 이후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효가 ‘페미 언어’를 썼다며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일부 기사는 ‘웅앵웅은 페미니스트 커뮤니티가 아닌 SNS에서 생긴 신조어’라며 ‘지효가 남혐 발언을 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SNS 이용자엔 여성이 더 많기 때문에 웅앵웅이 남혐 단어로 오해받는 것’이라는 논조의 기사도 있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웅앵웅’은 SNS에서 탄생했을지언정 여성들의 사용 빈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단어다. 하지만 이것을 ‘SNS 이용자는 여성이 더 많이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틀린 설명이다. ‘웅앵웅’이 여성들의 언어가 된 건, 그것이 여성 혐오를 수호하는 이들의 무(無)논리를 가장 적확하게 묘사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메갈’로 위시되는 여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남성 혐오를 드러낼 때 ‘웅앵웅’을 사용한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애초 이 ‘남성 혐오’라는 것은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으로 등장한 개념일 뿐, 현실에서 남성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강제적 힘으로 작용하지는 못한다. ‘남혐’과 ‘여혐’을 동일선상에서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지효가 8일 트와이스 팬 커뮤니티에 쓴 글의 내용처럼, 그는 지난해 3월 ‘증권가 지라시’로 인한 악성 루머에 시달렸고, 같은 해 8월엔 연애 사실이 강제로 공개돼 이유 없는 비난과 성희롱, 루머로 고통 받았다. 당장 ‘MAMA’ 시상식을 두고도 그의 사생활과 연관 지은 추측, 혹은 추측의 탈을 쓴 음흉한 낄낄거림은 얼마든지 많았다. 지효의 웅앵웅’ 표현이 가리킨 것도 바로 이런 허위사실과 그에 근거한 비난이다. 그의 표현 의도를 오해할 소지는 거의 없다. 그리고 데뷔 전 오디션 프로그램 Mnet ‘식스틴’에 출연했을 때부터, 지효는 외모 지적을 포함한 깎아내림을 끊임없이 당해야 했다. 5년에 걸친 모욕과 ‘웅앵웅’이라는 표현 중 폭력적이고 과격하며 그래서 해로운 건 과연 어느 쪽인가. 

그래서 지효의 발언은, 어느 기사의 제목처럼 “강한 해명이 부른 논란”이 될 수 없다. 논란을 부른 것은 지효의 해명이 아니라, 지효와 그를 비롯한 여성 연예인을 향한 사이버 테러는 무시한 채 그들의 상냥하지 않은 말투를 문제 삼는 ‘일부’의 인식이다. 논리적 근거 없음을 지적하는 ‘웅앵웅’은 여성을 비하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쿵쾅이’와 같은 수준일 수 없다. 나아가 단지 여초 혹은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라는 이유로 ‘남혐’ 낙인을 찍는 것은 여성들을 겨냥한 입막음에 지나지 않는다. ‘웅앵웅’이 남성 혐오라는 주장, 그것이야말로 이성적 사고가 결여된 ‘웅앵웅’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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