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한화생명e스포츠 선수단의 아침은 평소보다 일찍 시작됐다. 훈련이 밤늦도록 이어지는 선수단 특성상 기상 시간은 주로 오후 12시를 훌쩍 넘긴다. 하지만 이날은 잠이 채 덜 깬 선수들이 오전 11시부터 다목적‧피트니스룸이 위치한 ‘캠프원’ 지하 1층으로 모였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12월부터 주마다 1~2회씩 단체 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손대영 신임 감독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이날 쿠키뉴스와 만난 손 감독은 “RNG 사령탑을 맡았던 당시에 ‘우지’ 지안즈하오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며 “부상이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걸 직접 내 눈으로 봤다. 그래서 한화생명에 오자마자 사무국에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장 준 트레이너를 포함한 4명의 트레이너가 매주 캠프원을 찾아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들을 구단에 소개한 이도 손 감독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운동을 한 지 3개월 됐다. 몸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래서 날 담당하셨던 트레이너 분을 직접 추천했다”고 밝혔다.
이날 운동 프로그램은 족저 마사지로 시작됐다. 마사지 봉을 딛고 서자마자 반쯤 감겨 있던 선수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내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한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리헨즈’ 손시우였다. 지각생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장 준 트레이너는 돌연 선수단에게 코어 강화에 도움을 주는 ‘플랭크’를 지시했다. 그가 “시우가 올 때까지 플랭크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자 선수단 사이에서 아우성이 나왔다.
2분여가 지났을 무렵 “죄송합니다”라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손시우가 등장했다. 이내 그도 자리를 잡고 플랭크를 시작했다. 선수단의 플랭크는 이후 2분 여간 더 지속됐다.
플랭크가 끝난 뒤엔 본격적으로 운동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서전트 점프로 몸을 달군 뒤 고관절 등 다양한 분위를 사용하는 ‘오버헤드프레스 워킹런지’를 실시했다.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금지되는 등 운동 강도가 높았지만 선수단 분위기는 유쾌했다. 지친 기색 속에서도 불평 없이 주어진 프로그램을 해냈다. 웃음도 자주 나왔고 “한 쪽 다리가 들린다”며 서로의 자세를 직접 교정해주기도 했다. 손 감독도 자리를 끝까지 지키면서 솔선수범 운동에 참여했고, 때론 선수들과 장난도 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장 준 트레이너는 “선수들이 많이 굽어 있었다. 라운드 숄더가 심했고 코어힘이 운동을 안 한 20대 초반, 심한 선수는 40대 중반 여성 정도였다”며 “처음엔 다들 플랭크를 1분도 못했다. 이제는 보셨다시피 4분 이상도 거뜬히 해낸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선수단이 아무래도 손목이 좋지 않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부위별 운동만으론 해답이 될 수 없다. 신경계를 고려해 단일화 된 운동보다 신체 협응감을 키우는 운동으로 단련해야 한다. 발목, 고관절 위주로 운동을 진행하는 건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체형교정에 대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적용하면 선수 생활을 건강하고 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은퇴 후에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며 “지금은 웜업 단계다. 어느 정도 몸이 올라오면 일대일 트레이닝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운동 강도가 세지만 식단까지 빠듯하게 관리하진 않는다.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손 감독은 “식단관리는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어제도 피자를 먹었다(웃음). 음식으로 스트레스는 주지 않기로 했다. e스포츠 선수는 두뇌를 상당히 많이 사용한다. 체력 소모가 그만큼 많기 때문에 많이 먹어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때론 피로하고, 운동 후 근육통에 시달리지만 선수단의 만족감은 높다.
‘템트’ 강명구는 “많이 힘들긴 하다. 그래도 허리가 많이 좋아졌다. 서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다”며 웃었다. 우등생으로 꼽히는 ‘라바’ 김태훈은 “같이 운동하니까 재미있다. 운동을 하다보면 괴로운데, 그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체중 감량에 성공한 ‘큐베’ 이성진은 “이렇게 체계적으로 운동을 한 건 처음이다.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손 감독의 지시 하에 선수단과 함께 운동을 하고 있는 ‘노페’ 정노철 코치는 “힘들다”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허리랑 어깨, 목통증이 있었는데 이젠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운동 강도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운동 프로그램을 마친 뒤 이어진 QNA 시간에서 일부 선수는 “이젠 별로 안 힘들다. 다른 운동을 하자”고 입을 모았다.
e스포츠 선수들은 하루 8시간 이상을 꼬박 연습에 매진한다. 이 과정에서 두뇌 피로를 비롯해 목과 허리, 손목 등의 통증을 호소한다. 부상 정도가 깊어져 이른 시기에 은퇴를 결심하는 선수도 많다. 한화생명은 선수단이 몸 건강을 유지해 제 기량을 문제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었다.
선수단 관계자는 “‘푸쉬업 배틀’ 등 선수단 경쟁심을 이용한 운동도 실시하면서 흥미를 느끼게 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운동을 시작한 뒤로 자세, 통증 등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차츰 운동 시간, 빈도도 늘릴 생각이다. 시즌이 시작돼도 계속 운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