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잠시만요, 손 소독제 뿌려드릴게요.”
지난 11일 저녁 방문한 서울 중구의 명동 거리. 한 신발 매장에 들어서자 입구에서 마스크를 낀 매장 점원이 손에 소독제를 뿌려준다. 이 점원은 “강제는 아니지만 질병 전염 우려에 손님들께 권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명동 거리 다수의 매장들은 손 소독제를 입구에 비치해두고 손님을 맞았다. 명동 거리는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데다, 최근엔 한 확진자가 인근 백화점을 들렀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더 민감해진 탓이다.
‘코로나19’가 국내에 발생한지 한 달째. 그간 일상 속 많은 것이 달라진 모습이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필수품이 됐고, 기침을 하면 주위의 불편한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이날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 중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에는 잘 팔리지 않던 30ml 소용량 손 소독제가 이젠 화장품 매장의 가장 잘 보이는 가판대를 차지했다. 전자기기나 신발 등 고객의 손이 자주 타는 매장들은 소독제로 상품을 닦느라 분주했다.
이달 첫 주보다는 인파가 늘어난 모습이지만, 명동 상인들은 여전히 ‘코로나19’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지금 중국어를 쓰는 관광객들은 동남아 지역 화교거나, 홍콩인들”이라며 “아무래도 중국인들이 사라지다 보니 손님이 줄어든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인근 구두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 아르바이트생은 “상품을 계속 닦느라 상당한 시간이 든다”면서 “지문 등이 묻어있으면 손님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하겠나”라고 호소했다.
이튿날 찾은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도 ‘코로나19’로 뒤바뀐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대형마트의 시식 코너는 대부분 사라졌고, 시간이 지나 싼값에 내놓는 떨이 상품의 인기도 예전만 못했다. 위생비용 지출이 늘다 보니 대신 식료품 값을 아낀다는 손님도 많았다. 이마트 용산역점에서 만난 주부 강인선(47‧가명) 씨는 “마스크와 소독제, 영양제 등 4인 가족 지출이 만만치 않다”면서 “대신 부식 등 간식거리를 줄이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감싸고 장을 보는 모습은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감돌게 했다. 손님들은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 손잡이와 엘리베이터 버튼 등에 가급적 손을 대지 않았다. 실내에서도 장갑을 낀 아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 같은 현실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세계백화점 2층 여성의류 매장에서 마주친 한 여성 고객은 “확진자가 더 늘지 않길 바랄 뿐”이라며 “편히 외출하던 일상이 소중한 줄 몰랐다”라고 개탄했다.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당연시되는 현실에 분통을 터트렸다. 김석준(57‧가명) 씨는 “코로나19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마스크가 이처럼 불티나게 팔렸겠나”라며 “최근에는 불안감을 조성해 소독제까지 구입하게 만드는 것 같다”라고 분개했다. 이어 “이렇게 가다간 사람 마주하며 장사하는 상인들이 과연 버텨낼 수 있겠나”라고 우려했다.
같은 날 오후 찾은 종로 5가의 약국 거리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북새통을 이뤘다. 지난주처럼 손소독제를 10개씩 대량 구매하는 손님을 목격하진 못했지만, 여전히 다수는 마스크 등의 위생용품을 찾았다. 그나마 수급 사정이 나아진 탓인지 약국과 편의점에서 어렵지 않게 마스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최근 정부가 강력하게 매점매석 행위 단속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가격은 여전히 천차만별이었다. 같은 KF94 보건용 마스크라도 개당 1500원, 2500원, 3000원 등 제각각이었다.
실제로 A 약국은 마스크를 개당 1500원에 팔았다. 반면 인근의 B 약국은 마스크 3개입 제품을 9000원에 판매했다. 개당 3000원이다. 제조사는 다르지만 같은 KF94 등급 마스크다. 기자가 B 약국에서 마스크를 결제하던 도중, A 약국에서 사온 마스크를 보여주자 B 약국은 곧바로 9000원 결제를 취소하고 4500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약국 측은 개당 1200원에 들여온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수급 상황은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가격은 고무줄인 것이다.
몇 시간 뒤 저렴한 가격대의 KF94 마스크는 거의 다 소진돼 찾아보기 어려웠다. 종로5가역 인근에서 만난 한 중년 직장인은 “하루에 한 번씩 바꿔 쓰던 마스크를 이젠 이틀에서 길게는 삼일 간 쓰기도 한다”면서 “벌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1000원, 2000원 돈이 아깝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안 쓰면 주위 사람의 눈치가 보이는 면도 있다”면서 “마치 마스크 착용이 일상 속의 예절처럼 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썩 좋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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