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승훈 대성중학교 교장, 한국화 화가
투명한 사회는 암적 존재가 없다. 다시 말해서 불투명한 곳에 인간을 좀 먹는 벌레가 있기 마련이다. 개인의 쾌락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이 보여주는 기묘한 그림이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의 ‘쾌락의 정원’이라는 그림인데 패널에 유화로 그려진 그림으로 워낙 기괴한 모습과 노골적인 환락의 모습이어서 이 패널화가 교회에 전시되었는가에 대하여 아직 분분하다. 1500년경에 그려진 이 그림은 세 쪽으로 구분되어서 왼쪽에는 아담과 이브를 보여주는 에덴이 나오고, 중앙에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에 대두된 종말론에 가까운 쾌락적 모습이 전개되어 있다.
오른쪽 그림은 지옥이 펼쳐져 있다.
왼쪽의 그림은 만물이 창조되는 구약성경의 말씀대로 자연과 사람이 평등하게 만들어진 모습이라 생각된다. 중앙에는 인간 군상과 자연이 환락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무리 지어진 인간과 동물과 로봇 같은 모습의 건축물이 이미 미래를 예견한 듯하다.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좋아했던 스타일로 상상의 풍경이다. 육체적 욕망이 가득하고 자연에 대한 외경심은 없는 듯 보인다. 오른쪽 그림은 새와 돼지, 파괴된 인간의 육체와 악기 등이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다. 이는 단테 알레기에리의 신곡 중 지옥 편에 나오는 저주와 같다.
“너희 악당들의 영혼에 영원한 재앙 있으리라! 하늘을 우러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바라지마라. 나는 너희를 강 건너 저쪽 영원한 어둠 속, 불길과 어둠 속으로 끌고 가리라”(차기태, 미술 작품을 곁들인 에피소드 서양문화사, 필맥)
그림 윗부분에는 암흑 속에 불꽃이 타오르고 사람들이 탈출하는 모습이며 전쟁의 한 모습으로 군대가 어디론가 급히 나아가고 있다. 중심부에는 사람의 귀와 위장과 몸통과 얼굴이 보인다. 기괴한 동물이 사람을 헤치고 있고 사람이 칼에 맞아 신음하고 요트와 스케이트를 빠르게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 빠른 속도에 생명의 위험함을 목격하게 되고 악기는 처형 도구로 바뀌어 있으며 사람이 공포 속에 있다. 박혜성의 책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에 따르면 중앙의 얼굴은 이 그림의 화가 얼굴이고 몸통의 안은 술집이며, 새 머리를 한 기물이 인간을 먹고 있다. 토를 하거나 금을 토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음을 밝혔다. 나무나 토끼, 수녀복을 입은 돼지는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의 종말을 보여준다고 본다. 그림 아랫부분에 카드와 술병과 주사위 등이 한순간의 쾌락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보여주고 환경을 무시한 지금의 인간을 보여준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장 격노하며 일침을 가하는 그림으로 보인다. 인간의 가족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탐욕과 집단 이기심을 보여주고 있다. 진실을 외면하고 인간을 지나친 이념이나 종교로 몰고 가면 위험하다는 논리의 그림으로 읽어진다. 진실을 진실로 여기고 탐욕이 나에게 스며들지 않게 함이 더욱더 이롭게 될 것으로 본다.
요즘 일부 교회가 일인 교주를 중심으로 교계를 확장하면서 가정이 파괴되고 인간의 정신이 파멸되는 극치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는 지나친 탐욕이 부른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아마도 돼지에게 수녀복을 입힌 모습은 물욕을 감추고 인간을 탐하는 정체를 그림 한구석에서 보게 된다.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을 묶은 새끼줄에선 비린내가 난다’라는 일화가 있다. 그 근원은 죄와 업으로 이어져 있다는 말씀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본명이 히에로니무스 반 아켄으로 1450년경 네덜란드 생이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1481년 연상의 부인을 맞이하여 지방의 유지로 살았다고 전한다.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화풍으로 그림을 그려서 귀족들은 그의 그림을 신비주의, 환상주의로 보고 있다. 대표작으로 건초 수레,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