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거리에는 싱크대, 그릇, 세척기 등 한때 요긴하게 쓰였을 물건들이 즐비했다. 모두 폐업 점포에서 나온 것들이다. 중고 주방기기 시장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이곳은 서울시 황학동 주방거리다. 이 거리에 물건이 넘치면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체감 경기를 엿볼 수 있는 지표로 통한다. 13일 오전께 찾은 주방거리는 화창한 날씨가 무색하게 상인들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일반 식당은 창업이 거의 없어.”
인근의 한 중고주방업체 사장은 최근 분위기를 두고 이같이 평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하면서 요식업 등 자영업자의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증언이다. 창업이 없으니 이곳에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줄었다. 반면 폐업만 늘어 창고에 물건이 쌓이고 있다. 해당 업체 주인은 “더 이상 물건을 들여놓을 곳도 없다”라며 “프랜차이즈 점포 정도만 창업이 이뤄지고 있는 게 요즘”이라고 귀띔했다.
주방거리의 생태계는 간단하다. 보통 철거업체가 폐업매장의 물건들을 트럭에 실어오면 중고처분업체가 쓸 만한 물건을 골라 매입한다. 매입가는 철거업체의 인건비와 운임비 등을 고려해 흥정을 거친다. 최근에는 폐업 물건이 많아지면서 중고 물건의 가치도 많이 떨어졌다. 1000~2000만원 가량의 고가 커피머신기의 경우도 현재 매입가 200만원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이에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A급 물건들이 그대로 고물상으로 가는 경우도 빈번하다.
“뭐 보시러 왔어요.”
업체 주인들은 손님 상대보다 제품을 세척하거나 의자에 앉아 멍하니 거리를 응시했다. 이따금 손님이 기웃거리면 금세 떠나갈까 얼른 말을 붙였다. 이마저도 신규 창업 손님보다 기존 자영업자들이 많았다. 종종 흥정도 이뤄졌지만 구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남대문 인근에서 베이커리 카페를 열고 있다는 신모 씨는 “코로나로 매출 타격이 상당하다”라며 “상품 종류라도 늘리면 나아질까 발효기를 알아보러 왔다”라고 말했다. 이내 “조금이라도 가격이 낮은 곳을 찾아보겠다”라며 발걸음을 딴 가게로 돌렸다.
거리 골목의 한 업체는 이날 오후까지 5명의 손님만 다녀갔다며 울상을 지었다. 보통 여름철이 되면 제빙기나 냉면기계, 냉장고 등이 잘 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이런 대목조차 사라진 것. 매장 안쪽에는 거의 새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빼곡했다. 업주 김모 씨는 “(중고) 매입문의만 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난 여름에는 거래가 제법 이뤄졌는데, 이번에는 코로나로 영 시원치 않을 것 같다”라고 혀를 찼다.
“20년 장사 중 이런 적은 처음”
이곳에서 10~30년간 장사를 이어온 상인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예전에는 폐업이 잦은 만큼 창업도 많았지만, 지금은 줄 곳 폐업만 이어지고 있다는 것. 거리에 순환하지 않고 있는 물건들을 보면 얼어붙은 경기가 몸소 느껴진다고 했다. 중고거리에서 20년 이상 장사를 이어왔다는 한 상인은 “과거 IMF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정부 대출과 재난지원금 등의 효과가 끝나면 폐업 자영업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영업자들의 위기 상황은 관련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부동산 포털 부동산114가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휴게음식점의 연간 폐업률은 2016년 49.1%, 2017년 56.9%, 2018년 63.3%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61.2%로 소폭 감소했지만 올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지난 1∼3월에 66.8%까지 급증했다. 특히 소비 위축이 지속하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폐업률이 70%에 육박할 수 있다고 부동산114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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