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선천성심장병 환자 급증, 비수술요법 중재시술로 다스린다
[쿠키뉴스] 이기수 기자 = 흔히 선천성심장병이라 하면 소아에게만 있는 질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성인에게서 선천성심장병이 발견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그런 환자가 국내에 무려 10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많고 그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성인 선천성심장병 환자란 만 18세 이상 나이에 선천성심장질환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어려서 진단을 받고 이미 수술이나 시술을 통해 치료받았거나, 치료를 받지 않을 정도로 경미하거나, 아니면 어쩌다 치료시기를 놓쳐 수술이나 시술을 받지 못한 채 나이 18세를 넘긴 환자들이다.
경기도 부천시 세종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성호 박사(진료부원장, 사진)는 24일 “(그런 환자들이) 요즘 진료를 받는 선천성심장병 환자 2명 중 1명을 차지할 정도로 많아졌다. 이제 선천성심장병은 더 이상 신생아 또는 소아에게 국한된 질환은 아니란 얘기”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유일 심장전문병원인 세종병원이 몇 해 전부터 김 박사를 중심으로 소아청소년과, 심장내과, 흉부외과, 심장영상의학과, 산부인과, 마취과 등 성인·소아심장 전문의가 두루 참여하는 심장통합진료체계를 구축, 성인 선천성심장병 환자들에게 최적의 개인맞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다.
김 박사의 도움말로 나날이 증가하는 성인 선천성심장병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김 박사는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2년, 미국 하버드대 부속 보스톤아동병원에서 ‘소아심장중재시술’이란 비수술 심장 치료법, 96년 미시간대 부속 아동병원에서 심장수술 후 소아중환자 관리법을 각각 익혀 국내에 적극 소개한 선구자다.
김 박사는 또한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등 해외의 심장병어린이 환자와 의사들도 돕고 있다. 그동안 세종병원으로 초청하여 치료 해준 해외 심장병 어린이 환자 수가 3000명을 웃돈다. 심장병 치료기술을 전수해준 동남아 의료진도 여럿이다.
-국내 성인 선천성심장병 환자 수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성인 선천성심장병 환자 수가 소아 환자 수를 앞지른 지 오래이다. 정확한 우리나라 통계는 없다. 다만 미국에 현재 100만 명 이상의 성인 선천성심장병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국내에도 줄잡아 10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래진료를 받는 성인 선천성심장병 환자는 계속 증가하여 지금은 선천성심장병 환자 2명 중 1명이 성인일 정도로 많아진 상태다.”
-선천성심장병은 왜 생기는가?
“심장은 온몸으로 피를 순환시키는 펌프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선천성 심장병은 이렇게 중요한 심장에 태어날 때부터 구조적 결함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심실 사이에 생긴 구멍, 뒤틀린 대혈관, 심실이 하나로 통합돼 있는 단심실 등 심장 내 구조적인 결함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선천성심장병의 발생률은 전 세계적으로 보통 신생아 1000명 중 8명 빈도로 발생한다.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신생아 수를 연간 30만 명 정도라 하면 선천성심장병 아기가 매년 약 2400명씩 태어나고 있다는 계산이다.
선천성이라고 해도 유전적 요인은 전체의 10%도 못 된다. 선천성 심장병의 90% 이상은 원인이 불명확하다. 더욱이 산모가 임신 중 관리를 잘못한 탓으로 아기가 심장병에 걸리는 확률은 더욱 낮다.”
-성인 선천성심장병이 증가하는 이유는?
“50년 전만해도 선천성심장병 환자는 청소년기까지 불과 15%정도만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85%이상이 생존할 수 있게 됐다. 해가 갈수록 누적되는 성인 선천성심장병 환자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어릴 때 심장수술을 한 번 받으면, 모든 치료가 종결되는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는데 있다. 수술 후에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등 심장을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성인이 된 뒤 심장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건강검진을 해마다 받듯이 나이에 관계없이 심장병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평상 시 아무 증상이 없더라도 꾸준히 병원을 방문, 혹시 심장에 무슨 이상이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릴 때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의 약 10%만이 정기검진을 받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90%는 수술 후 치료가 다 끝난 줄 알고 방심하다 뒤늦게 치명적인 심장합병증 발생 진단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조기 발견이 힘든 심장병도 있다던데?
“심방중격결손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심방중격결손 환자들은 심잡음이나 청색증 같이 뚜렷한 심장이상 증상이 없다. 성인이 된 후 호흡이 가쁜 증상이 있거나 다른 이유로 흉부X선 검사와 심장초음파검사를 거쳐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방중격결손 환자 중 50%는 소아청소년기, 나머지 50%는 성인 되어서야 심장초음파검사를 통해 자신의 심장에 구조적 결함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는 말이다.”
-치료는 어떻게?
“선천성심장병은 심장 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수술로 구조적인 결함을 바로잡지 않고선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
가슴을 여는 개흉(開胸)수술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발전한 것이 비수술요법, 심장중재시술이다. 이 치료법은 흉골(胸骨)을 가르지 않는다. 상박부 또는 대퇴부 혈관을 통해 카테터라는 가는 도관(導管)을 심장 속까지 밀어 넣고 각종 시술이 이뤄진다.”
한 예로 접었다 놓으면 다시 제 모양으로 환원이 되는 ‘나이티놀’이라는 특수합금이 있다. 접히는 성질을 이용해서 대퇴부 혈관을 타고 심장 속으로 밀고 들어가 심실이나 심방 사이 비정상 구멍에서 펼쳐서 구멍을 막는 시술을 한다.
판막이나 혈관이 좁아진 경우도 있다. 이때는 혈관 속으로 ‘풍선 도자(導者)’라고 하는 카테터를 심장까지 삽입한 다음, 풍선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좁아진 판막이나 혈관을 넓힐 수 있다. 최근에는 폐동맥판막도 수술 없이 중재시술만으로 설치하여 치료해줄 수 있게 됐다.”
-보호자 또는 일반인에게 당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환자 또는 보호자와 의사가 서로 함께 믿고 의지하면 치료기간이 단축되고 그만큼 효과도 배가 된다. 특히 보호자는 의사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여 하나의 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너무 계약관계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깊은 유대감을 갖고 서로 신뢰하게 될 때 힘들게 넘어야 할 산도 쉽게 넘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심장병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선천성심장병 환우회 등 환자단체에서 여는 건강강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투병정보를 얻고 다른 환자들과 체험담을 교류하며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elgis@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