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옷‧마스크엔 땟국물, 쿠팡 상하차 10시간…“공허한 방역준수”

[르포] 옷‧마스크엔 땟국물, 쿠팡 상하차 10시간…“공허한 방역준수”

쿠팡 물류센터 직접 일해보니…30분만에 "마스크, 못 참겠다" [르포]

기사승인 2020-06-09 05:23:00

[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이마의 땀방울이 검은 땟국물로 변해 마스크에 스몄다. 하차 작업만 5시간째다. 반복된 중량 작업에 숨이 가빠 질식할 것만 같다. 이미 대다수의 다른 작업자는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내린지 오래다. 밀폐된 트레일러 내부에서 생수, 아기욕조, 선풍기 등 상품을 레일에 내리는 작업이 계속된다. 이윽고 “설렁설렁 하지말라”는 관리자의 재촉이 등 뒤에서 들려온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단함이 역력하다. 6일 새벽 2시. 쿠팡 목천 물류센터의 모습이다.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지 약 2주가 흘렀다. 그동안 물류센터의 방역체계에 대한 여러 지적이 이어졌지만, 직접 마주한 현장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안전화 돌려 신기가 이뤄졌고, 식당과 흡연장 등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량에 근무자는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갖지 못했다. 이들은 불안한 마음을 내비치면서도 “설마 내가 걸릴까”라는 마음으로 근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기자가 5일 오후 7시부터 6일 오전 5시까지 일용직으로 일하기로 한 쿠팡 목천 물류센터. 7시가 넘어서자 수십 명의 쿠팡 근로자를 태운 셔틀버스가 인근 도로를 가득 채웠다. 주로 2030세대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이내 물류센터 입구 앞에선 등록 절차와 발열 체크 등으로 줄이 늘어섰다. 바닥에선 청색 테이프로 줄 간격을 나눠둔 것이 눈에 띄었다. 관리자들은 이 선에 맞춰 서 줄 것을 요구하며 시간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 같은 거리두기는 물류센터 진입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건물 복도가 좁다 보니 사람 간 간격을 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됐다. 안전화 등을 갈아 신을 때도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 했다. 특히 안전화는 전 근무자들이 금방 벗어두고 간 듯 온기가 그대로였다. 어떤 것은 땀으로 젖어 축축함이 손에 그대로 느껴졌다. 기자와 함께 신발을 갈아 신던 몇몇 이들은 “냄새 안 나는 것을 찾겠다”라며 부지런히 다른 안전화를 골라댔다. 

안전화를 신고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자 말 그대로 전쟁터가 펼쳐졌다. 컨베이어 벨트는 정신없이 돌아갔고, 지게차의 후진음과 각종 기기의 경고음이 귓가를 올렸다. 일용직을 인솔하는 관리자의 무전에는 “물량이 밀리고 있으니 빨리 사람을 보내달라”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이날 기자를 포함한 15명가량의 남성은 하차 업무로 배정이 났다. 

하차 업무는 대형 트럭이 트레일러를 대면 2명가량의 근무자가 그 속으로 들어가 물건을 내리는 작업이다. 트레일러 내부까지 레일을 연장시킬 수 있는데, 이 레일 위로 상품의 바코드가 윗면이 되도록 일정하게 내려야 한다. 만일 바코드가 보이지 않거나, 하차 속도가 늦어지면 뒤에서 감독하는 고참 근로자의 따끔한 지적을 감수해야 한다.

일 특성상 트레일러 깊숙한 곳에서 종이박스, 비닐 등 포장지에서 나온 먼지들을 그대로 마시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 우려는 둘째 치고 작은 먼지 입자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트레일러에 실린 물건들도 에어서큘레이터, 수납장, 밥솥 등 고중량의 상품이 상당수였다. 마치 어두운 탄광에서 일하는 듯했다. 더워진 날씨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같이 작업하던 한 20대 청년은 시작한 지 30분 만에 마스크 쓰는 것을 포기했다.

공식적인 휴식 시간은 약 40분의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트럭 한 대가 끝나면 알아서 눈치껏 쉬어야 한다. 다음 트럭이 오기 전, 몇 분 남짓한 시간 동안 수분 섭취나 화장실, 흡연 등 욕구를 해결해야 한다. 물량이 밀린 상황이라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하차 작업 두어 시간 만에 목장갑은 검은 때로 얼룩이 졌고, 마스크 역시 침과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이날 쿠팡이 근로자에게 지급한 것은 목장갑 한 켤레가 전부다. 

이후 오후 10시가 되자 몇 개 조로 나눠 식사를 진행했다. 식사 전 손 소독제를 발랐고, 착석 명부도 작성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집단 감염의 위험성은 여전했다. 인파가 몰리다 보니 1m의 줄 간격은 생각할 수 없었다. 식당의 4인용 테이블엔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몇몇 근로자들은 칸막이를 두고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대다수 사람들의 옷과 머리에는 화물을 올리고 내릴 때의 먼지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특별히 마스크를 코까지 덮지 않더라도 쿠팡 측 관리자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턱에 걸치거나 입만 가려도 착용으로 간주하는 듯했다. 밤이 깊어지며 작업 물량이 늘어나자 사실상 마스크를 제대로 쓰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이 하차 작업을 했던 한 근로자는 “더 더워지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며 “마스크를 마음대로 벗지 못하는 것 역시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식사시간 외부의 흡연장에선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의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여럿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20대 일용직 청년은 '감염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다 감수하고 일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라며 “취업이 어렵지만 마냥 집에서 놀 수도 없어 돈을 벌러 나온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지금 상황에 이 정도 시급을 벌수 있는 곳은 쿠팡 물류센터 뿐”이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ist1076@kukinews.com

한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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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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