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계고 기능반 폐지하라” 학생 사망에도 지속되는 ‘메달 경쟁’

“직업계고 기능반 폐지하라” 학생 사망에도 지속되는 ‘메달 경쟁’

기사승인 2020-06-24 06:15:00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던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故)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직업계 고등학교 기능반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고 이준서군의 죽음에 대한 원인 규명과 직업계 고등학교 기능반 폐지, 기능경기대회 전면 진단 등을 요구했다. 

고 이군은 지난 4월8일 기능경기대회를 위해 학교에서 합숙훈련을 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공대위는 기능반 훈련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사망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공대위는 “학교는 기능반 학생들의 정상적 학습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기능반 학생들에게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단순 기능만 반복적으로 훈련하게 했다. 기능대회 전까지 메달 따는 기계가 돼 학생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강도 훈련을 감내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능반 학생들은 고등학교 기초 교과목 학습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성장과 발달을 추구하는 ‘고등학교의 존재 의미’를 망각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고 이군의 사망과 관련 중간보고도 발표됐다. 진상조사단장으로 활동 중인 권영국 변호사는 “고 이군은 수차례 기능반을 그만두려 했다. 2인 1조로 진행되는 종목이기에 자기 파트너의 비위행위를 제보하도록 한 후 본인도 기능반을 그만두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절망감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학교에서는 메달 경쟁을 위해 학생을 실적 수단으로 이용했다. 학생을 기능반에서 놓아주려고 하지 않은 학교의 욕심이 한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능반에서 선후배 간의 폭력 문제, 성희롱 등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교육부에서는 기능반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학생들을 통해 메달경쟁을 조장하는 기능경기대회의 전면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중간보고서에는 고 이군이 학교 측으로부터 기능반을 그만두게 될 경우 그동안 덮어주었던 흡연과 폭행 등 비위 행위에 대한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는 압박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 이군은 지난해 4월 후배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학교는 같은 해 5월29일 피해 학생들로부터 사건 진술서를 받았으나 고 이군에게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학교 측은 전국기능경기대회가 끝난 같은 해 11월5일에서야 고 이군으로부터 사건 진술서를 받았다.

반대로 고 이군이 기능반 선배들로부터 폭력과 괴롭힘을 당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선배들의 담배 심부름을 거절했다가 뺨을 맞았고 부모에 대한 성희롱적인 언사도 견뎌야 했다. ‘엎드려뻗쳐’ 등의 얼차려도 고 이군이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지속됐다. 고 이군의 기능반 친구가 선배의 강압이 못 이겨 자신의 정액이 담긴 율무차를 고 이군에게 속여 먹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고 이군의 친구들은 “준서는 너무 힘들다며 기능반을 계속해서 나가고 싶어 했다. (학교 측에서는) 준서에게 이번 대회만 끝낸 후 나가자며 준서를 못 나가게 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이군의 사례뿐만이 아니다. 기능경기대회는 직업계고 학생들을 ‘메달 경쟁’으로 내몰아 학습권과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수의 직업계고에서는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위해 일부 학생들을 기능반으로 선정, 반복적인 훈련을 시킨다. 다수의 기능반 학생들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채 학교에서 훈련에만 매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능반 훈련을 하다 다치는 학생들도 다수로 전해졌다. 지난 2007년에는 대구에서 황모군이 기능경기대회 훈련을 하던 중 압축기 뚜껑에 가슴을 맞고 사망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황군은 2007년 1월부터 하루 평균 12시간씩 실습을 해왔다.

일각에서는 기능경기대회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 전국 직업계고 교사 314명을 대상으로 기능경기대회 관련 설문 조사를 진행, 지난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응답자의 43.6%는 기능경기대회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은 48.1%로 집계됐다. 전체 응답자의 91.7%가 기능경기대회를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다만 기능경기대회 관계자는 “기능경기대회가 가진 순기능도 있다”며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취업의 문을 열어주고 우리나라 기능인 육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기능경기대회가 없어진다면 ‘희망’을 잃게 될 학생도 있다”고 덧붙였다.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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