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인 가족을 소개합니다 [TV봤더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인 가족을 소개합니다 [TV봤더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인 가족을 소개합니다

기사승인 2020-06-25 08:30:00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런담’ 싶다가도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뜨끔하거나 안쓰럽다. 가족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현실감 있게 다뤄서일까. tvN 월화극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를 볼 땐 드라마의 가족 중 한 명에게 마음을 주기가 쉽다.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드라마를 좇다가, 눈길을 돌리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나와 가장 닮은 ‘가족입니다’의 가족은 누구일까.

■ 장녀 김은주(추자현)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적이며 냉철하다. 동생이 9년간 사귄 연인의 바람을 알고 이별해 찾아왔을 때도, 그는 위로 대신 독설 같은 조언을 건넨다. 책임감도 강하다. 가족의 경제적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돈을 벌 수 없을 때, 그는 일과 주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어려움은 나누기보다 혼자 견딘다. 힘든 일이 있으면 놀이터에 앉아 혼자 울다가도 집에 들어올 땐 아무 일 없다는 얼굴이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남편에게 눈물을 보여주는 대신 눈물을 닦고 차분하게 대화하려 노력한다. 이성적인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고 타인과 고민을 나누지 않는 김은주는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의연할 것 같은 딸이자, 언니다. 그렇다면 김은주는 원래 그런 성격인 걸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위치와 누군가의 기대가 지금의 김은주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 차녀 김은희(한예리)

감성적이고 공감력이 뛰어나다. 감정적인 자세로 문제를 대면해 후회할 때도 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줄도 안다. 오래 교제한 연인과 헤어지며 친구인 박찬혁(김지석)에게 화를 내고 연락을 끊었지만, 문득 자신이 찬혁에게 한 행동이 화풀이였다는 것을 깨닫곤 찾아가 사과하는 인물이다. 매사 웃는 얼굴인 김은희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완충제 역할을 한다. 언니인 은주에게 기대가 집중됐다면, 가족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그의 몫이다. 때로는 요청받지 않은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가 ‘오지랖’ 소리를 듣기도 한다. 긍정을 앞세운 그에게 가족들은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정작 그는 항상 가장 중요한 자신의 목소리를 놓치거나 뒤늦게 듣고, 중요한 선택 앞에서 망설인다. 

■ 삼남 김지우(신재하)

가족들은 자주 이름 대신 그를 “막내”라고 부른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도 졸혼을 선언한 어머니에게도, 다툰 후 5년간 연락을 끊고 지냈던 두 누나에게도 막내는 공평하게 막내 노릇을 한다. 철없고 실없는 농담으로 심각함을 무마한다. 사고 후 스물둘 시절로 돌아간 아버지를 보면서 “나보다 어린 남동생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는 각종 타박과 이해를 동시에 받는다. 막내이기 때문에, 막내인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가볍고 앞과 뒤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그는 우연히 가족의 큰 비밀을 알게 된 후에도 내색하지 않는다. 가족들도 그가 왜 독립하지 않으려 하는지, 왜 그토록 돈을 열심히 모으는지, 그의 비밀에 관해선 진지하게 궁금해하지 않는 듯 보인다. 

■ 어머니 이진숙(원미경)

가족들은 이진숙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아는 건 별로 없다. 그래서 그의 졸혼 선언은 모두에게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이 독립하고 남은 방 아닌 방에서 천천히 졸혼을 준비했다. 진숙은 잡동사니를 모아 둔 방에 책상을 두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방법을 찾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한 켠에 둔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에 대한 감정은 이미 예전에 끝났지만, 자식 때문에 유지했던 관계를 이제는 스스로 끝내려 한다. 졸혼 선언이라는 충격 이후에야 가족들은 그를 궁금해한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사는 줄만 알았던 진숙이 매우 다양한 감정과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안다.

■ 아버지 김상식(정진영)

김상식은 치열하게 살았던 기억을 지운 후에야 자신의 삶을 타자처럼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기억을 잃고 22세로 돌아간 김상식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절망한다. 스물두 살의 눈으로 보기엔 앞서간 자신의 행동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배우자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자식들은 모르는 또 다른 자식도 있다. 다정했고 사려 깊었던 젊은 김상식은 지금의 김상식을 이해할 수 없다. 김상식이 기억을 헤매며 자신의 죄 많은 인생을 추적하는 동안, 가족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을 살피게 된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높은 운전석에 앉아 외롭게 한 길만을 달렸고, ‘죽고 싶다’는 말을 일기에 적으며 수면제를 모았다. 기억을 잊거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잘못이 사라지거나 감정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그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때, 김상식의 시간은 다르게 흐를 것이다. 가족들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inout@kukinews.com / 사진=tvN 제공

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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