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메디컬 드라마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실제 의사들 사이에선 한 웹툰이 화제다. 부와 명예를 꿈꾸며 10년가량 공부와 수련을 거쳐 의사가 됐는데, 현실은 환자 없는 진료실에 홀로 앉아 늘어나는 빚을 고민하는 개원의의 이야기다. 웹툰을 본 의사들은 '정말 리얼하다', '나를 보는 것 같다', '사실적이라 슬프다' 등 뜨거운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의사 만화를 그릴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동료의사들과 돌려보려고 의사 커뮤니티(메디게이트)에 올렸던 것이 각종 커뮤니티로 퍼지기 시작했죠. 큰일났다, 욕먹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이버 베스트도전 웹툰 페이지에 ‘내과 박원장’을 연재 중인 장봉수(필명) 작가의 말이다.
장봉수 작가는 현직 18년차 의사다. 한 차례 개원을 했다가 어려움을 겪고 지금은 봉직의로 일하고 있다. 만화 속 내용은 실제 의사로 겪은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는 “개원 초에 굉장히 금전적으로 힘들었는데 그때 경험이 모티브가 됐다”며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주변 의사들에 흔히 있는 문제나 걱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만화 주인공인 ‘박 원장’은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와 불뚝 나온 배를 가진 중년 남성 캐릭터로 현실감을 살렸다. 재수, 삼수에 걸쳐 의대에 입학해 10여년 수련 과정과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나니 만성질환을 앓는 40대 대머리 아저씨가 되어 있다는 설정이다. 파리 날리는 진료실에서 의술과 상술 사이를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드라마 속 의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현실 의사와는 얼추 비슷하다는 것이 장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의사들은 어떤 직업군보다 하루 종일 앉아있는 시간이 길다. 젊어서는 (공부하느라) 운동을 못하고 햇빛도 잘 못 봤다. 최대한 불쌍해보이게 그린 탓도 있지만 주변 의사들을 보면 다들 몸이 안 좋다”고 했다.
실제 의사로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의대 6년+인턴 1년+레지던트 3~4년)이 걸린다. 군복무와 전임의(1~2년)과정까지 끝내면 나이 40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불경기에 개원가 상황도 어렵다보니 박 원장의 처지에 공감하는 의사들이 많다.
장 작가는 “의대에 있을 때는 좋은 의사만 되면 생활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잘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인성이 바르고 의술이 뛰어난 의사라도 개원가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의학과는 별개의 문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도 은행 빚 100%로 개원을 했는데 당시 집주인이 파산해 전세자금을 날리는 등 힘든 시절이 있었다. 진료실 벽을 보고 소주 마시는 모습이 결코 픽션이 아니다. 망하는 개인의원은 실제로 많고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전했다.
웹툰 연재는 의사 커뮤니티에 재미로 올렸던 만화가 관심을 받게 되면서 지난 1월 정식으로 시작됐다. 다만, 철저히 필명을 고수하고 있다. 만화 작가 겸직을 아는 이도 가족과 몇몇 지인뿐이다.
장 작가는 “동료 의사들과 작은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생각에 의사 커뮤니티에 올렸던 것인데 의도치 않게 각종 커뮤니티로 퍼졌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괜찮아 놀랐다”며 “내용을 조금씩 수정해 대중들을 상대로 연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사가 의사 만화를 그린다는 점에서 부담도 적지 않다. 그는 “나를 치료하는 의사가 의업에 충실하지 않고 만화에 시간을 쓴다면 싫을 것 같다. 앞으로도 의사 일을 할 생각이라 비겁하지만 필명으로 그리고 있다”며 “사실 의사가 의사를 대변하려고 의사만화를 그린다는 시선은 부담스럽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다”고 했다.
자신이 그리는 의사의 모습은 결국 중년 자영업자의 이야기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장 작가는 “자영업의 종류가 의료업일 뿐이지 중년 자영업자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묵묵히 오랜 시간 본인의 자리를 지킨 대한민국 자영업자와 가장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개원 초반이라 어렵고 힘든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중반·후반으로 갈수록 박 원장이 자리잡아가는 모습이 담길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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