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장맛비가 내린 4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 의류 잡화점을 운영하는 김영임(70‧여)씨는 흐린 하늘을 보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김씨는 “여름이 되면 손님들이 옷도 많이 사가고 했는데, 오늘은 장사 4시간 동안 한 명도 다녀가지 않았다”면서 “코로나에 장마까지 길어지니 하루에 고작 5명만 사갈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날 남대문시장에는 우산을 쓴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지만, 점포에 들러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 좌판은 아예 문을 열지 않았고, 다수의 점포가 전날 장맛비 ‘물폭탄’으로 곳곳이 방수포에 덮혀 있었다.
평소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이나 분식집에 손님들이 줄지어 있던 모습도 마주칠 수 없었다. 손님 맞기에 분주해야할 상인들은 곳곳에 모여 걱정스레 이야기를 나눴다. 예년 여름보다 절반이상 손님이 줄었다는 게 상인들의 호소다. 남대문 시장에서 30년 간 장사를 이어왔다는 이모 씨는 “코로나에 장마까지 겹치니 방도가 없다”면서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평했다.
장기화하는 코로나19의 영향에 긴 장마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장마는 평년보다 열흘 넘게 길어지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 따라 최대 50일을 넘기는 곳도 있을 예정이다.
이처럼 코로나19에 장마까지 겹치며 언텍트(비대면) 트렌드가 더 심해지는 탓에 소상공인의 체감 경기는 더 나쁜 상황이다. 집에서 쇼핑을 하고, 여가를 즐기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 두기와 비대면 소비의 확산으로 오프라인 매출은 6.0% 감소했으나 온라인 매출이 17.5% 증가했다.
시장으로 손님들을 이끌어주던 재난지원금도 다 소진되어 그 효과도 볼 수 없게 됐다. 잡화점 골목에서 만난 상인 송기영 씨는 “지난달엔 재난지원금 결제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달부터는 다 사용한 탓인지 몇 없다”라고 말했다.
인근의 명동 시내도 텅 비어있긴 마찬가지였다. 길거리 음식을 팔던 노점들도 장마 탓인지 모습을 감췄다. 평소 길거리 호객을 활발하게 벌이던 화장품 가게 점원들은 매장 안에서 비오는 거리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 의류점 직원은 “몇 주간 궂은 날씨 탓인지 주말에도 사람들이 평소처럼 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했다.
평소 명동을 가득 메우던 외국 관광객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방한 외국인 수는 204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84만2000명보다 46.9% 감소했다. 해결책은 코로나19가 종식되어 하늘길이 다시 열리는 것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확산세가 여전한 만큼 아직까진 요원한 일이다. ‘임대문의‘가 붙어있는 빈 점포가 골목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상인들은 여름특수에 희망을 걸어봤지만 긴 장마에 한숨을 내쉰다. 신발 매장에서 만난 한 점원은 “8월 초는 여름용 샌들이나 신발이 잘 나갈 때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찾는 손님이 줄어들었다”면서 “코로나에 해외여행도 가지 않는데, 장마에 집 밖까지 나가지 않으니 아무래도 영향이 있지 않겠나”라고 고개를 저었다.
바캉스와 여행용품을 대폭 할인해 파는 곳도 눈에 들어왔다. 당초 올해 여름 폭염이 심할 것으로 예상해 대량 생산했지만, 긴 장마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 여름은 에어컨, 빙과, 바캉스 용품 등 계절상품들의 판매가 저조한 상태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8일까지 빙과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4% 감소했고, 전자랜드에서도 지난달 에어컨 판매량이 전년 대비 33% 줄었다. 코로나19에 소비가 크게 위축 된 데다, 계절상품 판매도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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