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직장인 여성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회사 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파운데이션이나 립스틱이 마스크에 묻는 등 불편함이 많아 자연스레 화장을 하지 않게 됐다. 다른 여직원들도 ‘노메이크업’ 행렬에 동참했다. 그러나 최근 남자 상사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상사는 “아무리 마스크를 쓰더라도 여자들은 화장을 하고 와야 한다”며 “사회생활에서의 예의”라고 다그쳤다. A씨 사무실의 여직원들은 모두 ‘풀메이크업’을 한 채 마스크를 끼고 업무를 보게 됐다.
여성들이 여전히 일터에서 화장·복장에 대한 제약을 받고 있다. 업무와 큰 관련이 없음에도 차림새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갑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지난 9일 직장인의 옷차림 지적 갑질 사례를 발표했다. 사례에 따르면 한 직장인은 매일 상사의 옷 지적에 시달렸다. 입고 있는 외투에 대해 “이런 거 입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가방에 대해 “아줌마들이 시장바구니로 드는 것이니 들지 말라” 등의 품평을 들어야 했다. 또 다른 여성 직장인들도 “립스틱을 바른 직원에게 쥐 잡아먹었냐고 묻더라” “치마, 신발 등 사장의 기준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경우 몇 번씩 불러서 지적한다. 치마를 입으면 무릎 위 3㎝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들 단체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 복장 논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류 의원은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 분홍 원피스를 입고 등원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네티즌들은 “술값 받으러 왔냐” “술집 도우미” 등의 성희롱 발언을 내놨다. 직장갑질 119측은 “국회의원조차 이렇게 공격당하는데 일반 직장의 이름 없는 여성 노동자가 겪어야 할 갑질과 성희롱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외모나 복장 지적은 아르바이트생(알바생)에게도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알바생 37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55.8%가 근무 중 외모 품평을 경험했다. 여성(64.6%)이 남성(44.5%)보다 외모 품평을 겪은 경험이 더 많았다. 근무지에서 복장 등 외모 관련 지시 사항이나 제재를 받았다는 여성 응답자는 67.1%에 달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2017 성차별 보고서’에는 “영화관과 외식업체, PC방 등에서 여성에게만 안경 착용을 금지하거나 립스틱 색상 등을 규정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직장갑질119 대표인 권두섭 변호사는 “복장 갑질 등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는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라며 “업무상 필요하기에 일정한 복장을 착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업무와 상관없이 상급자가 옷차림을 품평·지적하는 것이 반복되면 성희롱 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성들의 고충은 없을까. 남성들은 암묵적인 ‘드레스코드(복장 규정)’로 인한 압박을 토로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 복장을 자유롭게 입는 ‘캐주얼데이’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아무리 더워도 반바지는 입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 중구에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이모(27)씨는 “입사 후 처음 맞는 캐주얼데이에 반바지를 입고 갔다”며 “회사에 가니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 이후에는 눈치가 보여 긴 면바지만 입게 됐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드레스코드는 일반 기업보다 훨씬 엄격했다. 경기도의 한 시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발목까지만 오는 양말을 신었다고 지적받는 사례를 본적이 있다”며 “‘윗분’과 가까이 일하는 부서일수록 복장 규정이 엄격하다”고 이야기했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드레스코드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며 “전통적으로 지켜지던 암묵적인 규칙이 깨질 때 갈등이나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류 의원의 ‘원피스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는 어른 앞에서 안경을 썼다고 화를 내는 이들이 있었다. 세상이 바뀌면 문화도 바뀐다”며 “토의를 통해 규칙들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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