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목련고 2학년 6반인데요 [‘보건교사 안은영’ 봤더니]

안녕하세요, 목련고 2학년 6반인데요 [‘보건교사 안은영’ 봤더니]

기사승인 2020-10-09 08:00:18
▲사진=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안녕하세요. 저는 목련고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맞아요.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그 용산구에 있는 학교입니다. 지진 나서 뉴스 탔고 그 후에 학생들이랑 교사들이 정체 모를 이상 증세를 보인다고 조사도 했어요.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학교가 무너져서 또 뉴스에 나왔죠. 저도 그날 자고 일어나서 아침 뉴스 보고 진짜 놀랐어요. 학교 건물이 말도 안 되게 오래돼 낡긴 했어도 워낙 튼튼하게 지어져서 앞으로 100년은 쓰겠다 싶었거든요. 지진 때도 옥상 난간만 좀 무너지고 다른 덴 멀쩡했어요. 애들끼린 건물이 너무 지나치게 튼튼하게 지어져서 리뉴얼 한번 안 한다고 뭐라고 했는데, 학교가 무너지니까 마음이 좀 그렇긴 하더라고요.

제가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학교에 관해 비슷한 마음이 들어서예요. 제가 학교를 막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전국 고등학생 중에 학교 좋아하는 학생이 몇이나 있겠어요) 요즘 목련고에 대해서 말이 많으니까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요. 저도 진짜 학교를 막 다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뉴스에 나와서 보셨겠지만 우리 학교 진짜 높은 데 있어요. 그러면서 지각은 또 초 단위로 잡아요.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침에 맨날 욕했어요. 그리고 설립자 동상이랑 초상화도 학교에 크게 있었는데 그것도 좀 싫었어요. 무슨 할아버지가 활짝 웃고 있는 그런 건데, 하교할 때나 복도 지나치면서 보면 괜히 오싹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것도 이번에 학교 무너지면서 같이 무너졌더라고요.

아침에 웃음체조라는 걸 단체로 했는데 그것도 싫었어요. 생각해보세요. 교장이 나오는 영상에 맞춰서 서른 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겨드랑이를 때리며 하하하 웃는 그런 장면을요. 근데 이것도 하다 보니까 건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유튜브 보니까 겨드랑이를 치면 건강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웃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아침마다 그냥 습관적으로 웃으니까 괜히 복이 올 것 같기도 했고요. 아참 우리 학교 교훈이 ‘웃으면 복이 온다’예요. 그래서 그런가 선생님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막 잘 웃었어요. 이상할 정도로 자주 잘 웃었는데, 뭐 웃는 게 흉은 아니잖아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지각은 칼같이 잡지만, 학생 두발이나 복장은 자유로운 것도 좋긴 좋았어요. 우리 반 애 중엔 사시사철 주황색으로 염색하고 다니는 애도 있어요. 꼭 아이돌 같아요. 소문인데 걔 목에 문신도 있대요. 교복도 오래된 디자인이지만 무난하고 괜찮아요. 그런데 여학생 교복은 어깨 좁은 사람한테 좀 불편한 디자인이에요. 제가 그렇단 건 아니고요. 이런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하도 유튜브 영상 보면서 우리 학교 이상하다고 하니까 그 정도로 막 이상하진 않다고 얘기하고 싶었나 봐요. 맞다. 학교에 오리도 있는데 되게 귀여워요. 얼마 전에 온 영어 원어민 선생님이 학교 화단 관리를 잘하셔서 화단도 예쁜 편이고요.

선생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희 반 담임은 수업하면서 갓도 쓰고 그래요. 네 맞아요. 사극에 나오는 그 갓이요. 애들이 지루할까 봐 하는 거래요. 이 정도면 나름 열정 있는 선생님 아닌가요? 물론 담임이 갓을 쓰고 수업을 한다고 해서 애들이 한문 시간에 안 자는 건 아니지만요. 그리고 보건실 선생님도 좋아요. 사실 저는 잘 아프지 않아서 자주 가진 않는데, 맨날 가는 애들은 또 가서 잘 있다 오더라고요. 보건 선생님은 좀 특이한 게 플라스틱 장난감 칼 같은 걸 가끔 가지고 다녀요.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만 빼고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같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저도 별로 안 이상한 것 같아요. 그거 막 허공에 휘두르기도 하는데 왜 옛날엔 선생님들이 효자손 같은 것도 가지고 다녔다면서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도 학교 다니는 게 좋지마는 않을 테니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 푸는 거겠죠? 제가 이해심이 깊고 조숙하다는 얘길 가끔 들어요.

진짜 하려던 얘기는 지금부터예요. 학교 무너진 것 보고 사람들이 원래 터가 안 좋았다느니 지하실에 뭐가 있다더니 그런 소리 하던데 진짜 웃긴 것 같아요. 요즘 세상에 그런 말을 믿는 게 웃기지 않나요. 학교에 지하실이 있긴 하지만, 지하실 없는 학교가 어딨어요. 그리고 거기는 정기적으로 소독업체가 와서 관리할 정도로 학교에서 철저하게 안전관리하는 곳이에요. 가끔 근처 지나다니면서 지하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느니, 설립자 초상화 표정이 변한다느니 그런 말 하는 애들이 있긴 했지만, 설마 그 말을 정말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제가 나온 초등학교에 있는 말 동상이 열두 시만 되면 진짜 말로 변해서 운동장을 뛰어다닌다는 소문만큼 어이없어요. 믿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아세요.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까 감정적으로 좀 격해져서 말이 길어졌네요. 읽고 목련고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아는 선에선 다 말씀드릴게요. 학교에 귀신 나온다는 이상한 말엔 대답 안 할 거고요. 길어서 안 읽는 사람 있을 거 같으니까 세줄 요약도 할게요.

1. 학교 오래됐지만 하루아침에 무너져서 나도 황당
2. 소문처럼 이상한 학교는 아님
3. 학교에 귀신 안 나옴

아, 학교 복도에 오리 말고도 가끔 되게 귀여운 벌레? 같은 게 지나다니기도 해요. 말로 설명하긴 좀 어려운데 젤리처럼 생겼어요. 친구가 그러는데 학교가 높은 데 있어서 나오는 거래요. 아무튼,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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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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