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까말] 미안한 말이지만 현실적인 말도 필요하다는 그말

[솔까말] 미안한 말이지만 현실적인 말도 필요하다는 그말

기사승인 2020-10-15 07:00:02
▲ tvN ‘청춘기록’ 방송 화면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최근 방영 중인 월화 드라마 두 편을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tvN ‘청춘기록’과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입니다. 다루는 바가 비슷하지만, 풀어내는 방식이나 결이 달라 견주어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두 작품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청춘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청춘기록’의 사혜준(박보검)은 배우가 되기 위해 7년간 고군분투했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박은빈)는 4수 끝에 음대에 입학해 바이올린 활을 잡습니다. 두 사람 모두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인 점이 닮았네요.

두 작품의 또 다른 공통점은 주인공에게 ‘현실적인 충고’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모델을 하다가 연기자로 전향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사혜준에게 아버지 사영남(박수영)은 “헛꿈 꾸지 말라”고 다그칩니다. 그는 이런 때 꼭 “현실을 봐야 한다”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박성재(최대훈)도 현실을 좋아합니다. 극중 유명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의 한국 매니지먼트사 지사장이 된 박성재는 채송아를 찾아가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면서 “미안한 말이지만”으로 시작되는 말들을 합니다. 시작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 어렵다는 내용이죠. “미안한 말이지만”으로 시작된 말은 “현실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라는 말로 끝납니다.

▲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방송 화면

사영남이나 박성재, 드라마의 빌런(악당)이라고 보기엔 소소합니다. 실제로 각각의 작품에서 더 큰 적(?)도 존재하고요. 하지만 두 인물 모두 얄미움을 넘어서 짜증을 유발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현실적’으로 그렇습니다.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드라마 대사가 아닌 현실 속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기억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미안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거야”처럼 하나마나한 사과로 시작해 현실적이라는 말로 포장된 무례함을 건네받고 표정 관리를 해야 했던 기억이요.

말로 뼈를 때려 순살로 만드는 것이 유행인 시대. 특히 청춘들에겐 현실을 봐야 한다며 충고 아닌 충고를 건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영남이나 박성재는 우리 주변의 그런 인물들을 대변하고요. 이들은 말합니다.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 미안한 말이지만, 듣는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날 위한 말인지, 날 위한다는 핑계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인지 알 수 있죠. 아마 이들에게 큰 악의는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말하기 전에 상대의 상황을 살피는 섬세함이나 타인의 기분을 배려하는 공감 능력도 없고요.

나의 현실을 사는 건 나입니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것이 나의 현실이죠. 누구나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꿈을 놓지 못하거나, 재능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을 맛보는 것도 그런 현실 속에 있는 ‘나’이지 미안한 것을 알면서도 결국 그 말을 해버리고야 마는 그들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내 인생은 내가 살아내야만 하고요. 이보다 현실적인 일, 또 있을까요.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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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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