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죽음 직전에 다가서면 눈앞에 일생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화 ‘마리 퀴리’(감독 마르잔 사트라피)는 마지막 순간을 앞둔 마리 퀴리(로자먼드 파이크) 앞에 과거의 일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과학자인 그의 눈앞에 떠오른 지난 시간들은 어떤 모습 일까. 그저 찬란하기만할까. 관객은 마지막 불꽃이 꺼지기 직전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는 마리 퀴리의 시선으로 110분동안 그의 삶을 지켜 보게 된다.
마리 퀴리는 여성의 투표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던 시기,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 한 획을 그은 여성 과학자다. 1989년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해 1903년 여성 최초로 노벨상(물리학)을 받았고,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으며 세계 최초로 노벨상을 2회 수상했다. 영화는 이처럼 잘 알려진 마리 퀴리의 위대한 업적을 다루는 동시에 그의 사랑과 신념, 고뇌 등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여성 최초로 파리 소르본 대학에 입학한 과학자 마리 퀴리는 뛰어난 연구 실적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성격 때문에 연구실에서 쫓겨난다. 평소 그의 연구를 눈여겨본 과학자 피에르 퀴리(샘 라일리)가 그에게 자신의 연구실을 보여주며 공동 연구를 제안하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연구를 거듭하던 마리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해 피에르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다. 그는 이 발견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푼다. 하지만 배우자이자 연구 동료인 피에르가 갑작스럽게 사고로 사망하며 깊은 절망에 빠진다. 아울러 마리는 자신의 위대한 발견에 예견치 못한 이면을 알게 되고 고뇌에 빠진다.
위대한 과학자로서의 발자취가 담대하게 그려지는 한편, 마리 퀴리의 개인사는 섬세하게 그려진다. 영화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대신, 관조하는 것만으로도 극적인 마리의 일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마리는 과학과 연구에 관해선 한치의 물러섬도 없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하다. 관객이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특히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마리의 삶을 조명하다가 중간 중간 일본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나 미국 네바다 핵실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을 보여준다. 마치 죽음 직전 마리의 눈앞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실들이 환영처럼 보이게끔 하는 배치다. 그가 발견한 과학적 성취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완성도 높은 미술과 음악이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것도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오는 11일 개봉. 15세 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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