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보이는 ‘쇼미더머니9’ 출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을 만큼 일찍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탄탄한 발성을 바탕으로 유려한 플로우를 구사하는데다가 트랩부터 싱잉 랩까지 폭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릴보이를 처음 심사한 저스디스는 그의 랩에 감동받아 눈시울을 붉혔고, 또 다른 심사위원이자 프로듀서인 기리보이는 릴보이를 보고 랩을 그만 둘 생각까지 했단다. 그런데 정작 릴보이 자신은 지난 5년간 대인기피증과 우울감을 겪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때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릴보이가 속한 그룹 긱스의 데뷔곡 ‘오피셜리 미싱 유’(Officially missing you)가 나왔다. 캐나다 가수 타미아의 동명 히트곡을 샘플링한 곡으로, 잔잔한 기타 연주와 멜로디·랩이 어우러진 사랑 노래였다. 대대적인 홍보나 방송 활동 없이도 이곡은 음원 차트 1위를 휩쓸며 큰 성공을 거뒀다. 긱스가 이후 발표한 ‘오피셜리 미싱 유 투’(Officially missing you, too), ‘어때’, ‘플라이’(Fly) 등도 줄줄이 히트했다. 반발도 있었다. 이른 바 ‘발라드 랩’이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접근으로 상업적 성과를 노린 랩에 대한 비난이 나온 것이다. 일부 힙합 아티스트나 장르 팬들은 ‘발라드 랩’은 ‘진짜 힙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근 논란이 된 래퍼 딥플로우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2015년 발표한 ‘잘 어울려’에서 발라드 랩을 겨냥해 “멜론 맛 XX랩”이라고 지적한다. 음원사이트 순위만을 노린 음악이라는 것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랩이나 멜로디를 섞은 랩을 향한 단순한 비난은 아니었다. 오히려 힙합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돈 되는 음악’만은 좇는 가요 기획사에 맞선 저항이자 자신들이 지지하는 힙합 정신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 곡 뮤직비디오에 릴보이와 친분이 있던 음악인들이 출연했다는 것이다. 의도야 어찌 됐든, ‘잘 어울려’는 자본 중심의 가요 시장에 맞선 반발이 아닌 래퍼 개인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힙합이 아닐 순 없지 않느냐’ 하면서 많은 시도를 했던 것 같아요.” 릴보이의 말처럼, 그는 자신들의 진정성을 계속해서 호소하는 한편, ‘진짜 힙합’을 정의하는 편협한 기준을 비판했다. 래퍼 테이크원과 발표한 ‘핫 샷’(HOT SHOT)에선 “사랑 얘기하니 아웃사이더” “낭만 얘기하니 아웃사이더”가 됐다며 “힙합 하면 섹스와 돈. 우리 둘은 아니라고 늘 현실 아닌 꿈”을 꾼다고 읊조린다. 앞서 언급한 ‘F.U.L.U’를 통해서는 “우린 틀에 갇히기 보단 갖추려고 해, 자신을. 무대 위에 서더라도 낮추려고 해, 자신을”이라며 “너희의 틀에 날 가두지 마”라고 일갈했다.
‘쇼미더머니’ 우승이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를 말해주거나 디스전의 승패를 가려주진 않는다. 다만 “우리는 랩을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그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편견을 바꿔보자 하는 마음으로 ‘쇼미더머니’에 나온 거”라는 릴보이의 진심이 더욱 많은 이들에게 가닿을 것은 분명하다. 이제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바라던 대로 행복하게 음악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길. “음악을 하면서 오랜만에 재미를 느껴봤다”는 릴보이의 앞날에 많은 이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Mnet ‘쇼미더머니 시즌9’ 방송화면, 킹핀엔터테인먼트·그랜드 라인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