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함박눈이 쏟아진 지난 6일과 12일, 눈사람이 거리 곳곳을 장식했다. 흥이 잔뜩 오른 사람들은 나무에 붙은 눈사람, 입에 틀니가 박힌 눈사람 등 기상천외한 작품을 빚어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눈사람 사진을 공유하며 한동안 작품전을 벌이기도 했다.
평화로웠던 작품전은 악당의 난입으로 뒤숭숭해졌다. 눈사람을 공격하는 ‘눈사람 파괴자’들의 행각이 빈축을 샀다. 이들은 길을 가다가 고의로 눈사람을 발로 차거나 가격했다. 부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적힌 쪽지가 걸린 눈사람을 무너트리고, ‘내가 부숨’이라는 메시지를 남긴 사례도 있다. 대전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 직원들이 만든 ‘엘사’ 눈사람의 머리를 부수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은 공분을 샀다. 승용차를 몰고 가던 사람이 눈사람을 부수기 위해 정차하는 모습이 촬영된 CCTV 영상도 SNS를 통해 확산했다.
이 같은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강추위에 굳이 가던 길을 멈추고, 힘을 써가며 눈사람을 무너트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눈사람은 길을 봉쇄해 사람들의 진로를 방해한 것도 아니고, 혐오감을 일으키는 모습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이유 없이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은 지나친 폭력성을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눈사람 파괴자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눈사람을 공격했을까.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관심’과 ‘성취감’을 꼽았다. 임 교수는 “평소 삶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순간이 없고, 타인의 관심을 받을 기회도 부족한 사람이라면, 성취감의 반대급부로 눈사람을 부수는 장난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 정성으로 완성한 결과물을 파괴하면서 개인적인 성취감을 느끼고, 그런 행위가 사람들을 주목시키면서 관심 받고 싶은 욕구도 충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임 교수는 “일상에서 누적된 스트레스가 많고, 자주 경쟁적 상황에 놓였던 사람이 눈사람을 부수면서 일시적으로 긴장을 이완하고 쾌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파괴적인 행동이 생명체를 향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데 그쳤다면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눈사람 파괴자는 대부분 하룻밤 악역을 맡은 짓궂은 사람들일 것”이라며 “귀여운 장난이자 놀이로 이해해 줄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괴적인 행동이 반복되고, 그 대상도 확장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노성원 한양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행태가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특성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두번의 장난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주변에 해를 가하는 행동은 병적 증상”이라며 “타인의 행복과 권리를 무시하고, 이를 해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이른바 ‘사이코패스’로 불리는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파괴 행위 대상은 눈사람 같은 사물에서 점차 길고양이나 강아지, 사회적 약자 등으로 번진다. 평소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사람은 약물 치료를 시도할 수 있지만,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치료 방법이 없다. 노 교수는 “이들은 반복적으로 사회 규범을 어기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될 가능성이 높다”며 “절망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들은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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