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2021 리그 오브 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스프링 스플릿에서 올드 게이머들이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월드챔피언십(롤드컵)’ 종료 후 열린 스토브리그는 올드 게이머들에게 유독 싸늘했다. 세대교체의 기조 속에 몸값 높고, 기량이 떨어진 나이 든 선수들이 외면 받았다.
‘쿠로’ 이서행, ‘고릴라’ 강범현, ‘스멥’ 송경호, ‘플레임’ 이호종, ‘투신’ 박종익 등 LCK의 한 세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이 하나둘씩 은퇴를 선언했다.
평균 나이 28세. 프로게이머들의 직업 평균 수명이 2~3년인 것을 고려하면 오랜 기간을 뛰었지만 지난 시즌 이들이 보여준 활약을 감안하면 이르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실제 올 시즌 게임단의 선택을 받은 베테랑들은 올드 게이머들을 향한 시장의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시즌 초반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올해로 27살이 된 ‘칸’ 김동하다.
2020년을 중국 프로리그(LPL)의 펀플러스 피닉스(FPX)에서 뛴 김동하는 당초 올 시즌 은퇴를 결심했다. 하지만 2019년 SK 텔레콤 T1(현 T1)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정균 감독(현 담원 게이밍 기아 감독)의 간곡한 권유로 은퇴를 미룬 뒤 담원 기아에 합류했다.
김동하를 향한 시각은 반신반의였다. 전성기엔 한국 최고의 탑 라이너였지만 프로게이머로선 노쇠한 축에 속하는 그가 ‘너구리’ 장하권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이는 많지 않았다. 장하권은 지난 시즌 담원 기아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을 롤드컵 우승으로 이끈 선수다. 시즌이 마무리 된 뒤 초대형 계약을 맺고 중국 리그에 새둥지를 틀었다.
이를 의식했는지 김동하도 매체 인터뷰에서 “우승팀에 들어와 부담감이 큰 건 사실”이라며 “팀이 부진한다면 원인은 전적으로 내 탓이니 화살은 모두 내게 쏘아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김동하는 현재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특유의 강한 라인전 능력에 경험이 더해진 노련미를 앞세워 장하권의 빈자리를 말끔히 지우고 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담원은 올해 초 마무리 된 케스파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정규리그에서도 2연승을 달리며 순항 중이다. 김동하는 특히 친정 팀 T1과의 경기 2세트에서 ‘갱플랭크’를 플레이해 신예 ‘칸나’ 김창동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팬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현재 ‘플레이 오브 더 게임(POG)’ 포인트 200점으로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돌아온 레전드, ‘뱅’ 배준식(26)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SK 텔레콤 T1에서 활약하며 2018년까지 두 번의 롤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배준식은 해외에서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아프리카 프릭스 소속으로 LCK에 복귀했다.
배준식 역시 처음엔 의뭉스런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지속된 강행군에 지쳐 프로의식을 상실했던 2017년 당시의 충격적인 부진이 여전히 팬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재도약을 향한 배준식의 의지는 확고했다. “실력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절치부심 훈련에 매달렸고, 이는 좋은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17일 경기에서는 홀로 플레이메이킹을 하면서도 대미지를 욱여넣는 등,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로 주목 받았다. 활약을 인정받아 POG에도 선정됐다. 스프링 1주차에 그가 기록한 분당 대미지는 468로, 무려 리그 1위다. 아프리카를 두고 ‘뱅 원맨팀’이라는 얘기까지 심심찮게 들린다.
젠지e스포츠의 ‘라스칼’ 김광희(25)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김광희는 스프링 두 경기에서 솔로킬 7개를 기록하는 등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 시즌보다 더욱 성장한 모양새다. POG 포인트도 200점으로 공동 2위다.
이밖에 LoL e스포츠 역대 최고의 선수 ‘페이커’ 이상혁(26)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 중이다. 개막전 선발은 신예 ‘클로저’ 이주현에게 내줬지만 담원 기아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허수’ 쇼메이커와의 맞대결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올드 게이머들은 입을 모아 나이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동하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나이 많은 두 선수가 출전해 잘한 것 같아서 좋았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승패와 상관없이 서로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진심이다. 페이커 선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오늘 괜찮게 한 것 같다”며 웃었다. 타 매체 인터뷰에서는 “나이에 따라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기량 면에서 떨어지는 게 느껴지면 시간이 야속하긴 하더라. 그런 말이 최대한 나오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광희는 “롤드컵이 끝나고 시즌이 마무리 되면서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수들이 은퇴를 많이 했다”며 “나이 많은 선수들이 따뜻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탑 라인에는 나이 많은 선수가 나랑 동하 형 정도가 있는데 함께 잘 해서 올드 게이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많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여타 프로 스포츠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팀들은 신구 조화가 적절히 이뤄진 팀들이 대부분이다. 베테랑들이 시즌 말미까지 활약을 이어나가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을지, 아울러 올드 게이머를 향한 부정적 인식도 걷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