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투기 뻔한데 지분 쪼개도 불법 아니라니”…이태원1동 주민들 쫓겨날 위기

[가봤더니] “투기 뻔한데 지분 쪼개도 불법 아니라니”…이태원1동 주민들 쫓겨날 위기

한남1구역 재개발 반대위 "기획부동산, 지분 쪼개 주민 동의율 눂여"
"1970~1990년 지은 건물이지만 리모델링으로 노후 비율 낮아"
용산구청 "토지분할은 적법...재개발 관련 결정된 거 아무 것도 없어"

기사승인 2021-03-16 06:30:02
이태원1동 주택과 상가 건축물 곳곳에 공공재개발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안세진 기자
[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논란으로 공공재개발 사업지에서도 마찰음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오는 3월 말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 선정을 앞두고 있지만 공기업과 지자체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신이 커지면서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개발을 원치 않는 원주민들은 사업 추진의 배경에 해당 구청 직원들과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있어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태원1동 거리 모습. 사진=안세진 기자

이태원1동 어떤 일 있길래

지난주 금요일 오후 2시 이태원1동 한남1구역을 방문했다. 한남1구역은 이태원 해밀톤호텔 맞은편 지역으로 이태원을 한번쯤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알만한 엔틱가구거리, 베트남 퀴논거리, 외국인 거리 등이 모여 있는 서울시 1호 관광특구다.


이날 오후 이태원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치솟은 임대료로 원주민들이 떠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과 코로나19 영향으로 세입자와 관광객이 일부 줄어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핫한 관광지이자 데이트 장소였다.

한남1구역을 방문한 이유는 앞서 말한 공공재개발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지난 1월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1차 후보지를 발표했고 이달 말 2차 후보지 발표를 앞두고 있다. 현재 총 47곳이 검토되고 있으며 이중 용산구에서는 한남1구역이 유일하다.

공공재개발은 공공시행자가 공적 지원을 받아 장기 정체된 재개발사업에 참여하는 사업이다. 통상 재개발은 조합 설립부터 시작해 지역 주민들의 동의서를 받는 등 오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조합 내부의 마찰 등으로 사업은 수년째 표류하기도 한다. 

공공재개발은 정부가 직접 개발에 나섦으로써 이러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서울 도심 내 노후화된 지역들은 대체로 정부의 재개발을 바란다.

이태원1동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 사진=안세진 기자

“지분 쪼개서 주민 동의율 높여”

하지만 한남1구역만큼은 달랐다. 한남1구역에는 공공재개발을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담긴 현수막이 건물 곳곳에 걸려 있었다. 주민들은 최근 LH 땅 투기 사태로 정부의 개발사업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으며 “한남1구역에도 구청 직원들과 기획부동산의 투기가 없으리란 법이 없다”며 의심을 표했다.


지역주민 A씨(53)는 “용산구청은 재개발과 관련해서 별 일이 없을 거라고 해놓고 어느 날 갑자기 사업 후보지로 올려놓았다. 주민들의 뒤통수를 친 것”이라며 “구청은 정작 지역주민들과 소통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비판했다.

50년 넘게 이곳에 살아가고 있다는 주민 B씨(74)는 “1층에는 세를 주고 위층에서는 3대가 같이 살고 있다”며 “이곳은 현재 코로나19 여파로 상권이 침체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관광지로써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동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혈사태가 날 수도 있다. 현재 이곳 상가 세입자들은 권리금이 수천에서 수억이 된다”고 토로했다.

▲한남1구역 재개발 반대위원회는 기획부동산업자들이 들어와 신축 빌라를 지어 지분을 쪼개 재개발 주민동의율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안세진 기자

이들은 건축물의 노후도도 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A씨는 “준공시기만 보면 70~90년도에 지어진 건물이 많아 노후비율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들이 서류상으로만 거리를 걸어본 것”이라며 “여기 건축물들을 보면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 외관상 문제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기획부동산으로 의심되는 빌라 등 건축물도 여럿 있었다. 실제 몇몇 건축물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한 법인을 필두로 지분이 여럿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들의 주소는 서울 중구‧성북구‧마포구, 전북 전주, 강원, 경기 고양 등이었다.

또 다른 주민 C씨(41)는 “전체 5가구가 있다고 치면 이중 원주민인 4가구가 개발에 반대해도 외지인이 나머지 1가구를 사들여 지분을 10가구로 쪼개 개발의 목소리를 높일 경우 결과적으로 주민 동의율은 10대4가 되어 개발 쪽으로 여론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인이 땅을 쪼개 판 시점이 지난해 정부가 공공재개발 공모를 한 9월 전이라는 점을 예로 들며 구청 직원과 기획부동산업자들을 의심했다. 앞서 정부는 9월 21일 공모 시점을 기준으로 이날 이후 공공재개발 구역에서 땅을 산 사람은 입주권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그전까지의 거래에 한해서만 입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원용국 한남1구역 공공재개발 반대위원장은 “지난해 기획부동산이 들어와 멀쩡하던 4개 필지가 64개로 쪼개졌다. 여기에 살고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지역 주민들은 개발을 원하고 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태원1동 주택가 골목 곳곳 리모델링한 상가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사진=안세진 기자

구청, 법률적으로 문제 없다

용산구청은 지분 쪼개기와 건축물의 노후도 비율 등이 법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토지 분할은 구청에서 처리하지 않는다. 건축허가도 마찬가지”라며 “빌라 등을 지어서 분할하는 게 현재 법률상 막혀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건축물의 노후도 평가도 준공시점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리모델링을 통해 외관상 깨끗한 건축물로 보여도 준공시기가 이미 수십 년 된 상태라 법률적으로는 구조강도가 악화됐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청은 공공재개발 발표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며 상황은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현재로선 토지 소유주 10% 이상이 재개발 신청을 해온 게 전부다. 구청의 역할을 여기까지”라며 “이후 서울시가 이를 바탕으로 적합 여부를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상가 유지 등의 문제는 서울시 도시계획워원회의 심의를 통해서 이뤄질 것”이라며 “이 때 관광특구 등과 같은 지역의 특수성 보존 문제도 다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asj0525@kukinews.com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안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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