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지난 2013년 김치의 한자 이름 신치를 만들었다. 통일된 명칭을 만들어 중화권 수출을 장려한다는 취지다. 매울 신(辛)과 기이할 기(奇)자를 썼다. 중국어에는 ‘김’ 발음이 없다.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한식포채(韓式泡菜)’, ‘절건포채(切件泡菜)’, ‘백채포채(白菜泡菜)’ 등 제각각 이름으로 중국에 김치를 수출했다. 중국 쓰촨성에서 유래한 절임 채소 파오차이(포채·泡菜)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012년 7월부터 중국 내 언어학자와 마케팅 전문가 등과 협의해 이름을 신치로 정했다. 2014년 농식품부는 중국, 홍콩 2개 국가에 상표권 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16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신치라는 이름을 붙여 중국에 수출된 제품은 전무하다. 중국에 김치나 김치 가공식품을 파는 기업은 여전히 제품에 파오차이라고 표기한다. 신치는 왜 파오차이를 대체할 수 없을까.
중국은 자국 내 유통·판매되는 식품의 기준 규격을 ‘국가표준’(GB)으로 관리한다. GB에 표기된 용어와 위생요건 등을 따르지 않으면 팔 수 없다. GB에서는 한국 김치를 비롯해 절임류 채소를 파오차이로 분류한다.
애초 목적대로 신치라고 단독 표기된 김치를 유통·판매하기 위해서는 GB 수정 혹은 등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이 빠졌다. 현재는 신치를 표기하려면 파오차이와 병기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 김치를 파는 한 업체 관계자는 “신치에 대한 정부의 홍보가 충분했는지 의문”이라면서 “신치를 병기할 경우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정부의 반쪽짜리 작명으로 지난 8년간 신치는 있으나 마나 한 용어가 된 것이다.
정부 부처조차 신치 사용을 두고 엇박자를 냈다. 김치를 파오차이로 번역할 수 있다고 명시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훈령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만들어진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문체부 훈령 제427호)은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번역 및 표기는 관용으로 인정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시로 ‘김치찌개’를 ‘泡菜汤’(포채탕·파오차이찌개)으로 들었다. 문체부는 지난 1월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자 “정비하겠다”고 했다. 박기태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대표는 “신치를 만들어 놓고 부처끼리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신치가 김치의 한자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치의 특성을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치미와 백김치 등 맵지 않은 김치도 있다. 현대 중국어에서 신(辛)자는 맵다는 뜻으로 쓰지 않는다. 대신 ‘랄(辣)’자를 사용한다. 신(辛)자는 ‘고생한다’, ‘수고한다’의 의미로 쓰인다. 기(奇)자는 방언을 사용하는 일부 지역에서 ‘치’가 아닌 ‘기’로 발음된다.
정인갑 전 중국 청화대 중문과 객원교수는 “신치는 완전히 엉터리다. 뜻도 음도 김치와 다르다”라며 “김치는 한민족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변지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신치는 김치의 어원 침채(沈菜)와 맞닿아 있는 단어가 아니다”라며 “침채를 활용하면 파오차이와 구별되고 역사적 근거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GB와 관련한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신치 표기에 문제가 없다고도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현행 중국 규정상 김치와 신치, ‘Kimchi’ 등을 파오차이와 병기하는 방식으로 표시할 수 있다”며 “신치는 맵고 독특한 맛이라는 김치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흰 백(白), 물 수(水)를 함께 사용해 백김치(白辛奇), 물김치(水辛奇) 등 맵지 않은 김치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치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농식품부는 “신치를 개발한 후 중국 내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부담을 느껴 홍보가 부족했다”며 “문체부 훈령을 개정한 후 한식당과 기업의 의견 수렴을 거쳐 신치 확산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