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구현화 기자 =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14명의 전·현직 판사 가운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전직 법원행정처 처장·차장을 제외한 10명이 1심 판결을 받았다. 10명 중 2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판결이 확정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3일 1심 판결을 받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 등 4명은 총 7건의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14명 중 5번째 사건의 7∼10번째 피고인이다.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 대한 재판은 7건으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이 중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 사건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 등 2건에 연루된 4명만 아직 1심 판결을 남겨놓은 상태다.
가장 먼저 판결을 선고받은 법관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작년 1월 13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유 전 수석은 올해 2월 4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고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유 전 수석은 대법원에서 근무하던 2016년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휘하 연구관에게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하는 문건을 작성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받는다.
두 번째 판결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사건으로, 이들은 작년 2월 13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이다.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였던 신 부장판사와 영장 전담 법관이었던 조 부장판사·성 부장판사는 당시 사건이 사법부로 번지는 것을 저지하려 수사 기밀을 파악해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를 받는다.
세 번째는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다. 그는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으나 작년 2월 14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네 번째 판결은 서울서부지법 법원장이었던 이태종 전 법원장이다. 그는 2016년 서부지법 집행관 사무소 직원들을 향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영장 사본을 입수해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하는 등 수사 기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았으나 작년 9월 18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 전 실장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에 개입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 모임을 와해시키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이날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검찰이 2018년 11월 임종헌 전 차장을 기소하면서 사법농단 재판이 시작된 이후 2년여 만의 첫 유죄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두 사람의 일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 전 실장은 국회의원들이 기소된 사건 재판부의 심증을 파악하고 판사 모임을 와해시키려 한 혐의를, 이 전 상임위원은 옛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이 전 실장은 올해 2월 말을 끝으로 임기가 끝났고, 이 전 상임위원은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19년 1월 재임용에서 탈락해 둘 다 이미 법복을 벗은 상태다.
함께 재판을 받는 방창현 부장판사와 심상철 전 법원장은 현직 법관 신분으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금까지 판결이 선고된 10명의 사법농단 연루 전·현직 법관 가운데 유죄를 선고받은 현직 법관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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