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2021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스프링 스플릿이 담원 게이밍 기아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정규리그를 1위로 끝마친 담원 기아는 10일 오후 온라인으로 열린 젠지e스포츠와의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3대 0으로 승리했다.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 후 첫 시즌이었던 이번 스플릿은 질적 수준 하락에 대한 우려와 달리, 하위권 팀들도 경쟁력을 보여주는 등 흥미로운 볼거리를 선사하며 호평 받았다. 쿠키뉴스가 LCK 10개 구단의 스프링 시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1. 담원 기아, 국내엔 적수가 없다
지난해 서머 시즌 팀 사상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담원 기아는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최정상에 오르며 ‘소환사의컵’을 LCK로 다시 가져왔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롤드컵 우승 주역 중 하나인 ‘너구리’ 장하권이 중국 리그로 이적을 선택했고, 이재민 감독과 양대인 코치가 T1으로 이적하며 위기를 맞았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수습한 건 새로 지휘봉을 잡은 김정균 감독이었다. LCK 8회, 롤드컵 3회, MSI 2회 우승 등에 빛나는 김 감독은 베테랑 ‘칸’ 김동하를 영입하며 장하권의 공백을 메웠고, 선수단과 빠르게 융화하며 자신의 색깔을 덧발라 담원 기아를 한층 더 성장시켰다.
올해 초 한국e스포츠 협회가 개최한 ‘케스파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기대감을 높인 담원 기아는, 정규리그를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3위 한화생명e스포츠와 2위 젠지를 잇따라 3대 0으로 꺾으며 4개 대회를 연속 석권했다. 적어도 국내에선 이들의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관계자들은 ‘LCK에 담원 기아의 왕조가 도래했다’고 입을 모은다.
담원 기아는 오는 5월 아이슬란드에서 열리는 MSI에 참가한다. MSI는 롤드컵의 전초전 성격으로, 각 지역 스프링 시즌 우승팀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국제대회다. MSI 결과에 따라 담원 기아의 롤드컵 2연패 전망도 점칠 수 있다. 담원 기아는 북미의 C9, 일본의 데토네이션 포커스 미(FM), 라틴 아메리카의 인피니티e스포츠와 같은 조에 속했다.
한편 담원 기아의 미드라이너 ‘쇼메이커’ 허수는 LCK 우승 인터뷰에서 “기쁘긴 하지만 감흥이 크게 오진 않는다. MSI에서 우승해 감흥을 찾도록 하겠다”며 5개 대회 연속 우승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2. 젠지, 성장하는 ‘반지 원정대’
젠지는 지난 해 ‘비디디’ 곽보성, ‘클리드’ 김태민, ‘라스칼’ 김광희를 품에 안으며 이른바 ‘반지 원정대’를 결성했다. 리그 우승을 넘어 강력한 롤드컵 우승 후보로 거론됐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당시 스프링 시즌 준우승, 서머 시즌 3위를 달성한 젠지는 롤드컵에서 중국과 유럽 강호들을 상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특히 8강에서 만난 유럽의 G2 e스포츠에게 3연속 인베이드를 허용하는 등 상대에 대한 연구 부족을 노출하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올 시즌 줄곧 2위에 자리하며 상위권을 지켰던 젠지는, 그러나 2라운드 중반까지도 종종 하위권 팀에게 덜미를 잡히는 등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체급 자체는 높지만 낡은 전략을 고수하고 게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3월 T1과의 2라운드 맞대결에서 0대 2로 완패한 것을 기점으로 뼈를 깎는 노력 끝에 한 단계 더 성장했다. 결국 시즌 막바지 담원 기아를 2대 1로 꺾으며 정규리그에서 담원 기아에게 패배를 안긴 유이한 팀으로 남았다.
비록 결승전 패배로 우승컵을 들진 못했지만 서머 시즌 젠지의 전망은 밝다. 리그 최고의 원거리 딜러인 ‘룰러’ 박재혁을 보유 중이고, 탑 라이너 ‘라스칼’ 김광희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성장 중이다. ‘비디디’ 곽보성은 기량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라이프’ 김정민은 언제든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선수다. 다소 부진한 ‘클리드’ 김태민만 정상 궤도에 오른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3. 새 얼굴이 만든 새로운 팀, 한화생명e스포츠
몇 시즌 간 하위권을 전전하던 한화생명e스포츠는 올 시즌을 앞두고 지갑을 크게 열었다. 리그 최고의 미드라이너로 꼽히는 ‘쵸비’ 정지훈을 영입했고 원거리 딜러 포지션의 슈퍼스타, ‘데프트’ 김혁규를 품에 안았다. 코치로는 손대영 감독과 오래 한솥밥을 먹었던 이관형 코치를 영입했다.
한화생명은 확 달라졌다. 맏형 김혁규가 팀의 구심점을 맡은 가운데, 정지훈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지난해 주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뛰었던 신인 ‘뷔스타’ 오효성은 올 시즌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고 펄펄 날았다. ‘모건’ 박기태와 ‘두두’ 이동주, ‘아서’ 박미르와 ‘요한’ 김요한은 번갈아가며 경기에 출전, 서로를 보완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다만 숙제도 남았다. 한화생명은 올 시즌 정지훈의 슈퍼 캐리를 앞세워 젠지를 한 차례 잡은 것을 제외하곤 상위권 팀을 상대로 모두 패했다. 더 높은 곳에 오르려면 정지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전반적인 팀 전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번 스플릿 막바지까지 경쟁했던 탑, 정글 포지션에 대한 교통정리도 필요하다. 최적의 라인업 구성을 두고 코칭스태프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4. 소정의 성과 거둔 T1, 본 무대는 서머
올해 가장 말도 탈도 많았던 팀은 전통의 명문 T1이다. T1은 지난해 스프링 시즌을 우승했지만 서머 시즌을 5위로 마감하며 롤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이에 지난해 담원 기아를 롤드컵 우승으로 이끈 이재민 감독과 양대인 코치를 신임 사령탑으로 임명하며 명예 회복을 각오했다. 다만 T1에서는 양 코치가 감독으로, 이 감독이 코치로 역할을 바꿔 자리하게 됐다.
T1의 지휘봉을 잡은 양 감독은 10인 로스터를 구성하며 스프링 시즌 무한 경쟁을 예고했다. 경기 중 교체가 자유롭지 못하고, 경기 당 5명의 선수만 출전하는 LoL e스포츠에서는 10인 로스터가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즉시 전력감으로 분류되는 유망주가 다수 포진한 T1으로선 이들의 경쟁력을 실험하고픈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시즌 시작과 함께 피 말리는 경쟁이 시작됐다. 후보 선수가 없는 서포터 포지션의 ‘케리아’ 류민석을 제외한 9명의 선수가 번갈아가며 경기에 출전했다. 팀의 상징 ‘페이커’ 이상혁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하위권에게 덜미를 잡히는 등 팀이 표류했고, 일부 선수는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하는 등 팀 내외적인 분위기도 요동쳤다.
거듭 변화하던 로스터는 지난 3월 정규리그 2라운드 젠지전을 기점으로 윤곽이 잡혔다. ‘칸나-커즈-페이커-테디-케리아’로 구성된 라인업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이후엔 동일한 멤버로 일정을 치렀다. 정규리그 막바지부터 플레이오프 1라운드까지 6연승을 달리며 상승세를 탔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난 젠지에게 완패하면서 시즌을 최종 4위로 마무리했다.
여기까지는 양 감독이 약속한 대로다. 양 감독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T1의 스프링 시즌 목표 순위는 3~4위”라며 “스프링 시즌은 롤드컵을 향한 기반이다. 메타를 파악하며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싶다. 내 최종 목적은 롤드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T1은 올 시즌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교전을 피하는 등 소극적인 경기 운영으로 고민을 안겼는데, 이 부분에선 양 감독 부임 후 괄목할 만한 체질 개선을 이뤄냈다. 불규칙한 출전으로 인한 부작용도 분명 있었지만 경쟁 속에서 ‘테디’ 박진성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 눈에 띄게 기량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매해 최정상을 목표로 하는 T1으로선 분명 아쉬운 성적표다. 국내외 쟁쟁한 강호들을 넘기 위해선 스프링 시즌보다 한층 더 성장해야 한다. T1의 조타수인 양 감독의 서머 시즌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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