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그, 축구계 지각변동 예고… UEFA와 빅클럽 ‘치킨 게임’ 시작

슈퍼리그, 축구계 지각변동 예고… UEFA와 빅클럽 ‘치킨 게임’ 시작

기사승인 2021-04-19 16:54:35
슈퍼리그에 합류를 선언한 12개 유럽 빅클럽. 더선 제공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슈퍼리그 출범으로 세계 축구계가 전례 없는 지각 변동을 눈앞에 둔 가운데,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 빅클럽이 강경하게 맞서면서 ‘치킨 게임’이 예고되고 있다. 

19일(한국시간) 유럽축구 슈퍼리그(ESL)가 출범을 선언했다. 슈퍼리그는 세계의 유명 클럽들이 모여 만든 ‘그들만의 축구 리그’다. 아스날, 첼시, 리버풀, 맨체스터시티(맨시티), 맨체스터유나이티드(맨유), 토트넘(이상 잉글랜드), 유벤투스,  AC 밀란(이상 이탈리아), 바르셀로나, 레알마드리드, 아틀레티코마드리드(이상 스페인)가 합류를 공식화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바이에른 뮌헨, 도르트문트, 파리 생제르망, 리옹 등은 이번 명단에서 빠졌다. 슈퍼리그 측은 3개 팀을 더해 총 15팀으로 ‘창단 클럽’을 꾸릴 예정이다.

슈퍼리그는 각국 정규리그와는 별개로 주중에 치러진다. 8월부터 10개 팀씩 2개 조로 나뉘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펼친다. 각 조의 상위 3개 팀이 자동으로 8강에 진출하고, 4위와 5위 팀은 플레이오프를 거쳐 8강 진출 팀을 가린다. 결승전은 5월 중립 구장에서 단판으로 치러진다.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리그는 2022-2023시즌 개막을 목표로 한다.

12개 빅클럽이 슈퍼리그 출범을 강행한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구단이 허리띠를 졸라 맨 상황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유럽 축구 경제의 불안정성이 가속됐다”며 “팬데믹은 유럽 축구의 이익을 지키고 가치를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 비전과 지속가능한 상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 대회의 연대지급액은 현재 유럽 대항전을 통해 얻는 금액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초기에 100억유로(약 13조36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며 “또 창립 구단들에는 인프라 투자와 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위해 35억유로(약 4조6782억원)가 주어진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초대 멤버는 모든 경기에서 져도 매해 최소 1억3000만 파운드(약 2005억 원)가 보장된다. 

각 리그의 상위 3팀이 출전해 경쟁하는 UEFA 챔피언스리그의 경우 2019-2020시즌 우승팀 상금이1900만 유로(약 254억원)였다. 각종 경기 수당 등을 합치면 8200만유로(약 1096억원) 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슈퍼리그의 예상 상금에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유럽축구연맹. EPA 연합뉴스

기존의 국내외 대회를 주관하는 FIFA와 UEFA, 각국 축구 단체들은 크게 반발했다. 슈퍼리그가 열리면 빅클럽은 챔피언스리그에 나설 이유가 없다. 자연스레 중계권료 등의 수익이 크게 감소하고, 스몰클럽 등 축구계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UEFA는 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 축구협회와 EPL·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이탈리아 세리에A 사무국과 함께 성명을 내고 “(슈퍼리그)는 일부 구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행하는 프로젝트”라며 “대회가 창설된다면 우리는 이를 막기 위해 연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UEFA 등은 “이 사태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고려할 것이다. 축구는 개방된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FIFA와 6개 대륙연맹이 발표했듯,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구단들은 국내외 리그나 국제대회 참가가 금지될 수 있다. 또 해당 구단에 속한 선수들은 자국 국가대표팀에서도 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12개 창단 클럽은 요지부동이다. 출범 선언과 함께 유럽클럽협회(ECA)에서 탈퇴했다. 에드 우드워드 맨유 부회장은 ECA 이사회에서 사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 측이 지속적으로 맞불을 놓을 경우 갈등이 ‘치킨 게임(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슈퍼리그를 향한 현지 여론은 싸늘하다. 팬은 물론이고 축구계 저명 인사, 정치권까지 나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맨유의 전설적인 선수 리오 퍼디난드는 매체 인터뷰에서 “현 상황이 당황스럽다. 난 맨유의 팬이다. 구단을 사랑하지만, 이런 건 지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망신이다. 슈퍼리그는 축구란 스포츠의 모든 것에 반하는 일이다. 부유한 구단은 더 부유해지고 나머지들은 고려 대상이 되지도 않을 것”이라며 “상위 팀들은 아래 팀들과 역사에 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건 축구가 아닌 상업적 거래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맨유 출신의 게리 네빌은 “맨유와 리버풀에 가장 역겨움을 느낀다. 100여 년 전 노동자들에 의해 탄생한 맨유가 이젠 리그를 깨뜨리고 강등 없는 곳에 합류하려고 한다. 100년의 역사와 팀을 사랑해온 팬을 지킬 필요가 있다. 축구에 돈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다. 공정한 경쟁과 권리를 말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설적인 명감독인 퍼거슨 역시 “슈퍼리그와 관련된 논의는 70년 동안 이어진 유럽의 클럽 축구 역사를 무너뜨리는 일이다”라고 쓴소리를 뱉었다.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월드컵에서 뛰지 못한다. 연합뉴스

각 리그의 서포터즈들도 12개 빅클럽의 결정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첼시의 공식 팬 SNS 계정인 첼시 서포터즈 트러스트는 “ESL 창립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스포츠 정신을 희생하는 것”이라며 “탐욕 그 자체다. 스포츠가 유린당하는 모습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도 우려를 표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ESL은 축구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연대와 스포츠의 가치를 위협한다”며 “프랑스 구단들이 동참하지 않은 걸 환영한다”고 말했다. 전직 이탈리아 총리인 엔리코 레타는 “슈퍼리그를 따로 창설 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스포츠 정신이라는 건 모든 구단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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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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