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연구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중등교육과정연구모임 등은 24일 ‘고교학점제 고등학교 교사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고교 교사 113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8.9%는 고교학점제를 추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37.9%에 달했다. ‘계획대로 추진’은 13.2%에 그쳤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고 정해진 만큼 학점을 채우면 졸업을 인정하는 제도다. 지난 2018년부터 연구·선도학교를 중심으로 고교학점제가 도입됐다. 지난해부터는 마이스터고에 우선 도입됐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오는 2022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현 초등학교 6학년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2025년부터 전국 모든 고교로 확대된다.
교육계에서는 우려가 크다. 설문조사에서 교사 91.7%는 학교 현장과 충분한 소통 없이 교육부가 고교 학점제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로 중심의 선택형 교육과정 ▲기초지식을 배울 필수단위 축소 ▲시간강사와 무자격교사 양산 ▲입시 중심 과목 쏠림 우려 등의 문제도 제기된다.
이현 서울 여의도고 교사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직업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기술변화가 빠를수록 충분한 진로 탐색 기간이 필요함에도 교육부의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 1학년1학기에 조기 진로결정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고등학교 시기 특정한 진로 준비에 집중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여러 직업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기초지식이나 범용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지난 2일 교사 자격이 없는 기간제교사 임용을 허용하는 법안에 대해 규탄 성명을 냈다. 해당 법안은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 개정, 발의됐다. 교총은 “정규 교원과 교실확충 등 고교학점제 여건 조성은 갈 길이 멀었다”며 “검증도 없이 아이들 교육을 맡겨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이야기했다.
현재 마이스터고 등 일부 직업계고에서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경엽 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은 “직업계고는 (고교학점제 상황에서) 과목을 더 세분화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다”면서 “세분화된 학습은 산업과 직업세계가 변하면 쓸모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그는 “직업계고의 상황을 살펴볼 때, 일반계고에서도 시행되면 비슷한 문제들이 생길 것이 뻔하다”며 “모든 고등학교를 실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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