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과거 인디게임의 불모지라 여겨졌던 한국시장이 변하고 있다. 독창성과 참신함을 매력으로 게이머를 사로잡은 인디게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디로는 밥 벌어먹기 힘들다'는 인식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상황. 이에 쿠키뉴스 게임&스포츠팀이 유망 인디개발자를 게이머들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지난 3월, e스포츠팬의 가슴을 뛰게 만든 게임이 등장했다. ‘팀 사모예드’가 만든 ‘팀파이트 매니저’는 e스포츠만의 독특한 시스템인 ‘밴픽’이 중심이 된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이다. 최근 인디게임의 성공 공식처럼 여겨지는 펀딩-얼리 엑세스(미리 해보기)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정식 출시 2개월 만에 15만 여장이 팔린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게임이 팀 사모예드의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팀 사모예드가 고작 2인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소규모 게임사라는 점도 놀라움을 더한다. 지난 25일, 특유의 눈웃음이 닮은 남현빈(29‧기획아트담당), 남현욱(27‧개발담당) 형제와 경기도 성남의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팀파이트 매니저’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게임인가요?
남현빈 : 둘이서 같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을 만들기로 했어요. 평소에도 같이 게임을 만들자는 얘기들은 했었거든요. 처음에는 좋은 아이디어가 바로 떠오르진 않았어요. 출시는 무사히 시켜야 되니까 현실적으로 우리가 완성할 수 있는 장르를 만들자고 얘길 했죠. 그게 시뮬레이션 게임이었고요. 이걸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내다보니 ‘자동화전투’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처음에는 판타지도 생각했지만 결국 밴픽과 e스포츠를 결합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Q.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개발을 하셨나요?
남현욱 : 밴픽의 재미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싶었어요. e스포츠를 다룬 시뮬레이션 게임이 몇 개 있긴 하지만 밴픽 요소가 다소 옅어서 아쉬웠거든요. 우리는 밴픽에만 집중해서, 이를 핵심으로 삼고 나머지는 이를 보완하는 콘텐츠로 삼자고 얘기했어요.
남현빈 : 그래서 저희는 이걸 시뮬레이션 게임보다는 전략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밴픽이 중심이 되어서인지, 콘텐츠가 한정적이라는 평도 있었어요.
남현빈 : 맞아요. 피드백 주신 부분들에 대해 업데이트는 계속 하고 있어요. 저희 개발 블로그 공지사항을 통해 로드맵을 공개하고 있어요. 저희도 게임단을 운영하는 콘텐츠를 강화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다른 시뮬레이션 게임들을 봤을 때 결국 운영이 중심이 되면, 선수단을 육성시키는 데 집중하게 되고 나중에는 아무렇게나 플레이해도 이기게 되더라고요. 쉽게 질리는 게임보다는 전략에 무게를 두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또 경영할 것이 게임 내에서 많아지면 한판 한판 피로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어요. 밴픽 자체도 피로도가 높기 때문에 리그를 진행하기 어려워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경영적인 요소를 많이 배제했죠.
Q. 반응이 이토록 뜨거울지 예상하셨나요?
남현욱 :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요. 사실 저희끼리는 ‘만 장만 팔자’ 이랬었거든요. 차기작을 개발할 상황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Q. 재미있게 패러디를 한 부분이죠. 게임을 하다보면 ‘리그 오브 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가 연상되는 구단 명과 선수 이름이 나와요. 팬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는데요. 한편으로는 저작권과 관련한 고민이 없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남현빈 : 저작권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페이커’라는 아이디를 다른 게임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패러디가 게임의 핵심 요소도 아니고요. 어쨌든 e스포츠팬들에게는 또 다른 재미로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최근 LCK 측으로부터 팀 이름 및 로고에 대한 수정 요청을 받았어요. 6월 둘째 주에서 6월 말 이내로 LoL 팀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이름 및 로고에 대한 수정 패치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다만 선수 닉네임은 LoL과의 연관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Q.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남현욱 : ‘팩토리오’와 비슷한 자동화 게임을 구상 중이에요. 엄밀히 말하면 자동화라는 콘셉트만 비슷하고 게임성 자체는 조금 달라요. 이전부터 기획은 하고 있는데, 일단 팀파이트 매니저에서 필요한 패치를 모두 마치고 나서야 개발이 시작될 것 같아요.
Q. 팀 사모예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팀 사모예드라고 이름을 지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남현빈 : 원래 생각했던 이름은 ‘루트리스’였어요. 해달의 학명 중 하나인데요. 저희가 처음에 인디게임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때가 2015~2016년 즈음이었어요. 이름을 지어야 되니까 귀여운 것 아무거나 붙이자고 해서 루트리스로 시작했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루트리스라는 이름을 쓰는 게임 관련 업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개 품종인 사모예드로 바꿨어요(웃음).
Q. 인디게임 개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남현욱 : 게임 개발을 언제 시작했는지부터 얘기해야 될 것 같아요. 어렸을 때 ‘RPG 만들기’라는 툴이 있었거든요. 이걸 사용해서 게임을 만드는 게 취미였는데, 중학교 때 ‘마인크래프트’의 성공을 보고 게임 개발을 조금 더 심층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집중적으로 배웠죠. 인디게임 개발은 게임 회사를 가면 내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가 없어서 시작했어요. 혼자 그래픽과 개발을 다 할 수는 없는데 마침 형이 그 때 전역해서 같이 하게 됐죠.
남현빈 : 당시 저는 행정학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어요. 내가 혹 행정고시에 합격을 하더라도 ‘삶이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고민 상담 겸 동생이랑 얘기를 하던 중에, 같이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설득하더라고요. 그래서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됐네요. 처음에는 게임 개발에 대해 잘 몰랐는데, VR 게임을 만드는 회사를 동생과 함께 다니면서 많이 배웠어요. 지금은 개발에 대한 이해도도 나름 높아졌어요.
Q. 명문대를 나온 것으로 아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남현빈 : 크게 반대는 안 하셨어요. 당시엔 자퇴는 아니었으니까요(웃음). 처음에는 부모님 댁이 계신 진주에 내려가서 둘이 개발을 했어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자퇴를 했죠. 학교를 관뒀지만 후회는 없어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좋아요.
Q. 형제이다 보니 개발 과정에서 잦은 다툼이 있지는 않나요?
남현빈 : 그런 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았어요. 별로 싸운 적이 없죠. 일하면서 피드백을 하긴 하는데요,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콘텐츠에 관한 것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남현욱 : 형이랑 어렸을 때부터 같이 게임을 많이 즐겨왔어요. 오히려 형제라서 좋은 부분도 있어요. 일정 부분만 이야기해도 술술 소통이 잘 돼서 좋아요.
Q. 지금은 두 분이서 하고 계시지만, 직원 충원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남현빈 : 글쎄요. 사람이 더 들어오면 퀄리티는 좋아질 수 있겠지만, 저희가 잘 뽑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우리의 게임 방향성을 함께 맞춰 나가기도 어려워 질 것 같아서 고민이 되네요.
Q. 함께 개발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남현빈 : 팀파이트 매니저 출시 두 달을 남겨두고 갑자기 허리디스크가 터져서 수술을 했어요. 물리치료를 받고 집에 가는데 다리가 저리고 움직일 수가 없더라고요. 어떻게든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 보니 디스크라고 하더라고요. 난감했죠.
남현욱 : 그래서 그 1~2주 동안 제가 모든 걸 대신했어요(한숨).
남현빈 : 기뻤던 순간도 생각나네요. 출시를 앞두고 게임 스트리머들한테 키를 뿌렸어요. ‘제발 아무나 한 명만 플레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는데, 한동숙님과 타요님이 우리 게임을 해주시더라고요. 시청자들이 정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기뻤어요.
Q. 게임 개발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으셨는지요?
남현욱 : 게임 개발보다는 팀파이트 매니저를 포기할 뻔 했어요. 개발 시작 3달쯤 지났을 때였나, 밴픽 콘셉트에 경영 파트를 붙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도 재미가 없는 거예요. 밴픽은 참 재밌게 느껴지는데, 그래서 좌절했죠. 그래도 이걸 완성하지 못하면 우리는 게임을 영원히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1~2주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 뒤에 개발에 다시 매진했어요.
남현빈 : 사실 저희가 이전까지 제대로 게임을 완성한 적이 없었거든요. 회사 다니면서 접은 프로젝트만 10개가 넘어요. 퇴사를 했는데도 완성을 못 한다면 이건 진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포기하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정말 힘들긴 했지만 좋았어요.
Q. 팀 사모예드에게 인디게임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남현빈 : 인디게임 개발은 내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잖아요. 인디게임 개발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세상 어떤 게임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게임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플레이하면서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죠. 인디게임은 저희한테 즐거움이에요. 시스템을 만들고, 결과물을 내놓을 때까지의 그 수많은 과정도 저희에겐 온전한 즐거움이죠.
Q. 인디게임 개발자의 장단점을 꼽자면요?
남현빈 : 아무래도 시간관리가 장점이겠죠. 일 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거요. 단점은 아무래도 불투명한 미래겠죠. 게임은 완성하는 것도 힘들지만 성공하는 건 더 어렵거든요.
남현욱 : 수익이 불안정한 게 아무래도 제일 큰 단점이겠죠. 실패 확률이 높다는 압박감도 있고요.
Q. 인디게임 개발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남현빈 : 게임의 퀼리티보다 자기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재미에 집중해야 해요. 퀼리티가 높아도 어디서 본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사기 싫어요. 결국 차별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현욱 : 게임 내 사소한 모든 것의 퀼리티를 높이는 것보다 우선 완성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팀파이트 매니저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거예요.
Q. 인디게임 개발자를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남현빈 : 조언하기엔 조금 부끄러운 위치에 있지만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수입이 불안정할 수는 있지만 자기 환경에 맞춰 계속 도전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언젠가는 그 결과물들이 쌓이고 쌓여서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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