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 한국 축구의 전설, 유상철 전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오후 향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코뼈가 부러지고, 암세포가 덮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유 감독이기에 축구계 뿐 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도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 영웅
무엇보다 유 감독은 국민들에게 ‘월드컵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 동점골로 국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선 한국의 4강 진출을 견인하며 감동을 안겼다.
그는 특히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2대 0으로 앞서는 추가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월드컵 첫 승을 이끌었다. 여전히 회자되는 4강의 기적은 그의 발끝에서 시작된 셈이다.
다양한 포지션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그는 한일 월드컵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 축구 최고의 ‘팔방미인’
유 감독은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멀티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다.
키 183㎝의 탄탄한 체구와 강철 체력, 골 감각과 헤딩, 수비 능력, 높은 전술 이해도 등을 두루 갖춰 골키퍼를 제외한 어떤 위치에서든 제 역할을 다 해냈다.
프로 첫해 수비수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됐고, 1998년엔 미드필더, 2002년엔 공격수로 베스트 11에 뽑힐 정도로 다양한 포지션을 훌륭히 소화했다.
1998년엔 K리그 득점왕(15골)까지 차지하는 등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
코 뼈 부러져도 헤딩… 한국 축구 ‘투지의 아이콘’
유 감독은 ‘투지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했다.
2001년 6월 월드컵 전초전으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 당시, 유 감독은 전반전 상대 선수와의 경합 중 코뼈가 부러졌다. 주변에 만류에도 계속 뛰겠다고 고집한 그는 풀타임을 소화했고, 결국 후반 헤딩 결승골로 한국의 2대 1 승리를 이끌었다.
유 감독과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홍명보 울산현대 감독은 가장 기억에 남는 고인의 모습으로 당시 장면을 꼽으며 “한국 축구의 투혼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유 감독이 2003년 한일전 당시 잦은 몸싸움에 의해 유니폼이 크게 찢어진 채로 경기에 임한 모습 또한 축구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췌장암 진단에도 그라운드에…
유 감독 특유의 투지는 지도자가 되어서도 여전했다.
2019년 최하위권을 맴돌던 인천의 1부 잔류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인천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은 유 감독은, 매 경기 살얼음판 같은 생존 경쟁을 치렀다.
그러던 시즌 막바지, 유 감독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주변에서 지휘봉을 내려놓으라며 만류했지만 유 감독은 병마와 싸우며 선수들을 끝까지 책임졌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팀을 지휘하는 유 감독의 투혼에 모두가 인천의 분전을 기도했다.
결국 인천은 2019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경남FC와 비기며 1류 잔류를 확정지었다. 유 감독은 경기 종료 후 선수, 팬들과 포옹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꼭 그라운드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유 감독은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 과정을 잘 견뎌내며 복귀 의지를 불태웠다. 2020시즌 인천이 다시금 위기에 빠졌을 땐, 온전치 못한 몸을 이끌고 현장 복귀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그의 투혼에 병마도 주춤했고, 지난해엔 눈에 띄게 암세포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올해 초 암세포가 전이됐고, 돌아오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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