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30일 서울 서초구에서는 8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오토바이 3대와 차량 1대를 들이받고 미용실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미용실에 있던 30대 여성 손님이 차량에 깔려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졌다.
경찰이 야간, 고속도로 등 특정 조건에서 운전할 수 없는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에 나섰다. 매년 증가하는 고령 운전자 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경찰청은 7일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세부 도입방안 연구’를 위한 연구용역 공고를 내고 해당 연구를 진행할 연구진 모집 중이다.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는 고령자, 특정 질환 등에 의해 안전운전 능력이 떨어진 운전자에 한해 특정 조건에서만 운전을 허용하는 제도다. 주간 시간대 집 반경 20km 이내, 최대 주행 속도 60km 이내만 운전이 가능한 식이다. 경찰은 오는 2025년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발생시킨 교통사고는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초 삼성화재 부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경찰청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3만 3239건으로 2015년보다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치사율은 교통사고 100건 당 사망자 수 2.9명으로 비고령(1.7명)에 비해 80% 더 높았다.
고령 운전자 중에서도 80∼84세가 낸 사고의 사망·중상자가 65∼69세, 70∼74세, 75∼79세, 85∼89세보다 더 많아 가장 ‘위험’한 연령대로 나타났다.
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고령운전자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토록 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자진반납할 때 1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주거나, 교통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제도가 활성화 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충남 아산갑)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운전면허를 소지한 65세 이상 고령자 333만 7165명 중 반납 인원은 7만 3221명으로 반납률이 2.2%였다.
해외에서는 이미 조건부 면허 제도를 시행 중이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도로 주행시험을 거친 뒤 인구 규모가 3500명 미만의 도시일 경우 자택 주변 병원, 교회, 커뮤니티 센터 주변을 운전할 수 있는 조건부 운전면허(restricted local license)를 신청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의사 진단에 따라 운전자에 맞는 맞춤형 조건부 운전 면허를 발급한다. 이 밖에 스위스, 호주 등에서도 조건부 면허제도를 운영한다.
다만 고령 운전자 당사자들의 거부 여론은 높은 편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지난해 9월 전국 운전면허 소지자 2184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사이에서 ▲ 야간운전 금지 ▲ 고속도로 운전금지 ▲ 별도 최고 주행 속도(시속 60㎞ 등) 적용 ▲ 긴급 제동장치 등 첨단 안전장치 장착 차량만 허용 ▲ 도시지역(시내도로)에서만 허용 ▲ 집 반경 일정 거리 이내만 허용 ▲ 동승자 탑승한 경우에만 허용 7개 제한 유형 중 4개에 대한 부정 반응이 우세했다. 2개는 긍정 반응이 50%를 간신히 넘겼다. 야간운전 금지 유형만 ‘필요하다’는 답변이 67.4%로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윤일주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 제도가 운전 면허를 박탈하고 제약을 가하는 제도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오해”라면서 “오히려 고령 운전자에게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조건과 범위 내에서 운전을 허용함으로써 기본권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령 운전자 사고 발생시 피해자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운전자 본인 신체에 가해지는 상해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크다”면서 “고령 운전자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홍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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